4대강 사업과 관련한 천주교 내부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함세웅, 김병상, 문정현 신부 등 천주교 원로 사제 25명은 1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4대강 사업 관련 발언을 비난하며 퇴진을 요구했다.

10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정 추기경이 주교회의의 결정을 왜곡했다”고 비판한 것에 힘을 보태는 움직임이다.

정 추기경은 8일 저서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인 주교회의가 3월 공표한 ‘4대강 사업 반대 선언’에 대해 “주교단은 4대강 사업이 자연을 파괴하고 난개발의 위험을 보인다고 했지 반대한다는 소리는 안 했다. 위험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개발하라는 적극적 의미로도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또 “4대강 문제는 토목 공사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다룰 문제지 종교인들의 영역은 아니다. 4대강이 올바로 개발되느냐 안 되느냐는 결과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들 원로사제는 이날 ‘시대를 고민하는 사제들의 기도와 호소’ 성명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젊은 사제들의 충정과 호소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밝혀 정의구현사제단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어 “성경에 나타난 하느님의 목소리, 교황들의 거듭된 가르침, 환경토목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우려와 반대, 주교회의의 가르침, 이웃 종교들의 일치된 염원 등과 이미 드러난 자연 파괴의 참상만 보더라도 4대강 사업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며 4대강 사업 반대 입장도 재확인했다.

특히 “교회공동체의 일치와 연대를 보증해야 할 추기경이 주교단 전체의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결론에 위배되는 해석으로 사회적 혼란과 교회의 분열을 일으킨 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며 “동료 주교들, 평신도, 수도자, 사제 등 교회의 모든 지체를 향해 용서를 구하고, 용퇴해야 한다”고 공격했.

또 “전문가 영역을 운운함으로써 판단을 유보하는 핑계를 지어내고, 결과적으로 엉거주춤한 중립지대로 피하는 태도는 사랑의 자세가 아니다”면서 “주교가 독단을 자행하거나 사견을 관철하기 위해 교회 공동체의 신문과 방송 등 대중매체의 공정성을 제한한다면 교회 본연의 공동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정 추기경를 비난했다.

후배 사제들을 향해서는 “입으로만 사랑을 가르칠 뿐 약자들의 절망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유익을 돌보는 교회의 이중적 처신에 너무나 시달려왔다”고 돌아보면서 “희생과 죽음의 현장이 바로 성체성사와 기도, 전례와 영성의 고향이다. 십자가의 자리와 거리를 두고 성당의 담장 안에서만 읊조리는 기도는 한낱 죽은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높은 담장의 보호 속에 안주하는 순간 사목자는 하느님의 길에서 멀어지고 만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격언에는 고통 받는 자들의 하소연을 듣고 더불어 애통해하신 하느님의 연민(compassion)이 담겨있다. 피조물과 백성이 울부짖는 곳이라면 거기가 바로 종교의 거처가 돼야 한다”며 사회 참여를 촉구했다.

이밖에도 “한나라당의 날치기 예산에 얹혀서 통과된 친수구역활용특별법은 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악법”이라며 “4대강 예산 22조원으로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민생예산이 줄어들자 그 중 8조원을 수자원공사 사업으로 돌리고 그 적자를 보존해 주기 위해 4대강 수변에 위락시설과 선착장을 개발하도록 특혜를 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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