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올해로 한국 초연 10주년이며 브로드웨이 50주년, 원작 돈키호테완간 400주년이다. 170분에 달하는 <맨 오브 라만차>는 관람하고 나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역사에 남는 장면을 보유한 뮤지컬이다.

긴 프롤로그를 지나 세르반테스가 처음 돈키호테로 변신하는 장면은 <맨 오브 라만차>가 원작의 위대함을 다른 장르로 성실히 계승했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기사소설에 빠진 노인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기사가 없는 시대에 스스로 돈키호테가 된 과정에는 이상과 환상, 비극이 눈부시게 압축돼 있다.
 
돈키호테가 주막집 하녀이자 창녀인 알돈자를 보고 반하는 것 역시 환상과 모험에 휩싸였기 때문에 가능하다. 돈키호테는 괄괄한 성격의 알돈자를 보자마자 하늘에서 내린 여인이라는 찬사와 함께 둘시네아라고 이름 붙인다. “현실은 진실의 적이오라는 돈키호테의 대사처럼 모든 현실을 버리고서야 비로소 알돈자 이면의 진실을 발견한다. 미친 사람으로 놀림 받는 돈키호테가 가진 단 하나의 통찰이다.
 
자신을 성욕의 도구로 보는 남자들을 증오하는 알돈자는 돈키호테 역시 같은 부류로 취급한다. 돈키호테의 찬사와 사모가 장난 혹은 모욕은 아닌지 의심한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산초를 통해 또는 스스로 고백을 통해 알돈자를 격정적인 혼란에 빠트린다. 자기혐오와 체념의 벽을 깨트리기 위한 혼란이다.
 
돈키호테는 알돈자를 노새끌이 무리의 희롱과 폭력으로부터 구함으로써 그녀와 가까워지지만, 돈키호테만이 볼 수 있는 진실 된 환상으로 알돈자를 다시 바닥 밑으로 내동댕이친다. 불한당들을 굳이 상대할 필요 없다는 알돈자의 상식과 경험을 부정하고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찾아가 돕는 게 기사의 의무라고 밝힌 것. 알돈자는 돈키호테를 대신해 노새끌이들을 간호하러 가지만 끔찍한 윤간과 폭력을 당한다. 돈키호테 또한 그를 추적하던 까라스코로부터 굳게 간직했던 환상을 박탈당한다.
 
알돈자 캐릭터가 가진 불멸의 힘은 공연 막바지에 드러난다. 알돈자는 돈키호테에게 악담과 저주를 퍼부은 이후, 삶의 끈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결국 돈키호테를 찾아가 마지막 희열을 안겨준다. 죽음을 앞둔 돈키호테는 알돈자의 눈물과 고백을 통해 불쌍한 노인이 아닌 혼자서 세상을 상대했던 돈키호테로서 죽음을 맞는다.
 
알돈자는 스스로를 둘시네아라고 칭하면서 오랫동안 거부했던 이름을 받아들인다. 둘시네아가 아닌 알돈자라고 수없이 부정했지만,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음을 견딜 수 없는 배신과 치욕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다. 둘시네아는 돈키호테가 꿈꿔온 환상(진실) 위에 현실을 겹쳐 놓는다. ‘알돈자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실패하고 좌절을 겪으면 어떡하지에서 끝날 뻔한 불안과 후회를 돈키호테의 인도를 따라 마주하고 예언처럼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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