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의 영광 어디가고 어쩌다 이렇게 됐나

지난 1일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 마련된 총학생회 선거 기표소를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는 투표율 저조로 연장투표를 실시한바 있다.

과거 각 대학 총학생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했다. 정치적 구호를 외치며 민주주의 선봉에 서 투쟁하는 투사들이었다. 실제로 4·19혁명과 부마사태, 6월 항쟁의 중심에는 총학생회가 있었다. 또한 총학생회 간부들 중 상당수는 정치인으로 변신해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 총학생회는 과거와 사정이 달라졌다. 사회의 중심축에 있던 총학생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했고, 대학 내에서조차 영향력이 축소됐다. 이제 해마다 찾아오는 총학생회 선거는 저조한 투표율로 투표독려운동이 흔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투표 역시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아 내홍을 겪고 있다. 올해 역시 대학가 총학생회 선거는 투표율이 낮아 투표 연장에 들어가는가 하면 부정선거 의혹, 사찰 의혹 등 파행으로 얼룩졌다.

가장 파문이 일고 있는 곳은 성균관대와 고려대다. 이 두 대학은 총학생회 선거를 치루며 혼탁 양상으로 극심한 후유증을 남겼다.


성균관대, 선거 오차율로 논란

성균관대는 지난달 26일 총학생회 선거 개표가 진행되던 과정에서 선거인명부 가투표수와 실투표수가 일치하지 않았다. 개표는 절반 이상이 진행됐지만 오차율이 4.4%를 넘자 개표를 중단했다.

성균관대 선거규칙은 오차율이 유효투표수의 3%를 넘을 경우 당선이 무효 처리되고 재투표를 실시한다고 규정(65조 1항, 68조 1항)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선거시행 전반에 걸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선관위는 연석중앙운영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고, 연석중앙운영위의 결정에 따라 선거자체를 무효 처리(66조 2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선관위는 선거세칙을 적용하지 않고 일부 오차표만 사장표로 처리한 후 지난달 29일 투표를 재개, 당선 공고를 냈다. 선관위는 이 당선 공고에서 개표 종료 후 3일 이내에 이의제기가 없으면 당선을 확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당선확정 공고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성대신문은 “개표 종료 3일 이내에 이의제기를 한 상태로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같은 날 ‘개표 재개에 관한 해명’을 공고해 “이번 사태는 제 3자에 의한 고의적인 선거방해이며, 선거가 무효 처리되면 이후 진행될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이번 선례가 악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선관위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성균관대 홈페이지이지 등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번 선거와 관련된 각 단체의 입장정리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또 의혹을 제기하고 선거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심지어 1인 시위를 통해 이의를 제기하는 적극적 움직임도 있다.


고려대도 학생 사찰 파문 시끌

고려대는 ‘학생사찰’ 파문으로 시끄럽다. 현 총학생회 집행부가 ‘학내 강의 평가 사이트’에 등록된 학생들의 아이디, 학번 등 신상정보를 이용해 학생들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학내 강의 평가 사이트인 ‘KLUE’에 총학생회 활동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학생들의 신상정보를 열람하고 총학생회 집행부 내부 커뮤니티에서 이 신상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 학생들은 ‘KLUE’를 폐쇄하고 ‘KLUE’의 운영 권한은 새로 선출되는 제44대 총학생회로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총학생회 측은 ‘KLUE’를 통해서가 아니라 구글 검색을 통해 학생들의 신상정보를 알게 됐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계속됐다. 전지원 총학생회장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회의와 전학대회에 고려대 학생들의 신상정보를 조회하고 공유한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 또 선관위위원장직에서 사퇴했고 총학생회 활동자가 포함된 선거본부 한 곳도 해산했다.

고려대 학생들은 차기 학생회장 임기 시작 전에는 전임 총학생회장단 탄핵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탄핵안을 상정했다. 고려대에서 총학생회에 대한 탄핵안이 상정된 것은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탄핵 투표마저도 총투표 결과 투표율이 38.5%에 그쳐 부결됐다.


서울대 7년째 투표기간 연장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해에도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다. 지난해 12월 선거를 치루며 투표함 사전개봉의혹, 도청 등으로 문제를 빚었다.

당시 이 일은 ‘서울대 X파일’로 까지 불리며 상당한 파문을 야기했다. ‘유튜브’에 투표함 사전개봉의혹을 폭로하는 동영상이 올라왔고, 이 동영상을 올린 측이 선관위의 사무실을 도청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의혹을 폭로한 쪽도, 폭로를 당한 쪽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이 같은 잡음에 서울대는 두 번에 걸쳐 총학생회 선거를 했음에도 유효투표율 미달로 무산돼 1년째 총학생회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지난달 23일부터 25일까지 치러진 총학생회 선거역시 개표 유효 투표율인 50%를 넘기지 못해 또다시 총학생회장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따라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일까지 연장투표에 들어가 서울대는 7년 연속 투표기간 연장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다행히도 서울대 총학생회는 연장투표 끝에 운동권 성향의 후보가 당선돼 공석이었던 총학생회장의 자리를 채웠다.

경희대도 지난달 23일~25일 선거를 치렀지만 유효투표율 50%를 얻지 못해 연장 투표에 들어가 겨우 과반을 넘기는 ‘턱걸이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건국대, 중앙대, 이화여대, 한양대 등도 마찬가지여서 대학가의 고질적 문제인 ‘싸늘한 표심’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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