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들끓는 무기징역 감형, ‘어찌하오리까’

부산 여중생 이모(13)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강간 살인 등)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길태(33)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부산고등법원 형사2부(김용빈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사형을 구형한 원심을 파기하고 이같이 선고했다. 하지만 20년 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과 10년 간 신상정보 공개 명령 등 원심의 일부 내용은 그대로 적용됐다.

재판부는 김길태에 대해 모든 혐의는 인정되나 사형은 가혹하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김길태가 항소하면서 제기한 사실오인(무죄주장)과 심신장애(정신이상)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재판으로 다시 김길태의 정신감정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 김길태 정신감정은 각각 어떤 결과를 도출했는지 되짚어봤다.

이번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심신장애의 유무 및 정도의 판단은 법률적 판단이라고 전제했다. 정신질환의 종류와 정도, 범행 동기, 경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김길태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러나 “현대의 정신과학 및 의학의 불완전성이 고려되어야 한다”며 “측두엽 간질, 망상장애 등의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김길태가 범행 당시 심신미약상태에 있었다는 감정결과도 있는데다 수형생활 중 여러 차례 환청, 망상 등의 문제를 호소하며 정신과적 투약을 받은 점을 고려할 때 정상인과 같은 온전한 정신 상태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김길태의 정신상태가 정상참작이 된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암흑대왕이 자신을 지배해

김길태의 1차 정신감정에서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사이코패시), 2차 정신감정 때는 측두엽 간질과 망상장애, 반사회적 인격 장애 진단이 나왔다. 2차 정신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검찰 측이 재판부에 재감정을 요청해 3차 정신감정이 실시됐고, 그 결과 측두엽 간질과 망상장애가 나타나지 않았다.

김길태는 세 차례의 정신감정에서 ‘암흑대왕’이라는 존재에 대해 언급했다. 자신의 몸속에 제 3의 인물인 암흑대왕이 있다며 특히 술을 마실 경우 의지력이 약해져 암흑대왕이 자신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이 암흑대왕을 다른 차원의 존재라고 지칭하며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혼잣말을 할 때가 있는데 이때는 암흑대왕과 싸울 때다”라고 했다. ‘우주에서 자신을 조정한다’ 혹은 ‘암흑대왕이 자신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내용을 자주 언급하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귀에서 쇠 갉아먹는 소리 같은 환청이 들리고 자신을 욕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며 환청, 환각에 시달리고 기억장애를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화장실 등에서 몇 시간 동안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중얼거리며, 기억을 상실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사고를 치고 난폭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1, 2차 정신감정 엇갈린 행보

1차 정신감정의 경우, 범행 당시만을 특정해 선택적 기억상실을 보이는 것은 정신의학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범행 당시의 내용만 특정해 선택적인 기억 상실을 보이는 것은 왜곡과 과장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진단했다. 또 김길태가 진술한 암흑대왕에 관련해서는, 정신의학적으로 원래 인격과 이차적 인격이 서로 의식을 하지 못하는 것에 반해 김길태는 자신의 몸 안에 다른 존재가 있다고 말을 하고 의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전형적인 해리장애와 다르다며 정신의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를 토대로 1차 정신감정은 김길태가 반복적으로 반사회적 범행을 했고 범행 후 은신했으며 정신병적인 상태는 없었다는 점에서 형사책임이 있다고 감정했다.

하지만 2차 정신감정은 상반된 결과를 내놓았다. 우선 교도소 수용 당시의 의무기록을 제시했다. 이 의무기록에 따르면 김길태는 2005년 4월부터 2009년 교도소 퇴소 전까지 일관되게 정신병적 증상을 호소해왔으며 기타 비기질적 정신병적 장애, 망상장애 추정, 정신분열병(배제진단)으로 진단받았다.

2차 정신감정인은 김길태가 의식장애 증상과 환시, 환청 등의 증상을 발작적이며 간헐적으로 일으키고 있다며 이는 측두엽 간질의 전형적 특징이라고 했다. 간질 발작시 ‘전조 증상’이 뚜렷하고 간질 발작 후 의식혼란 증상을 보이는 것을 간질의 전형적인 특징적 근거로 내세웠다. 또 김길태가 다른 수감자들에게 소외를 당할까봐 오히려 증상을 숨긴 점을 들어 자신의 의식장애나 기억장애를 의도적으로 왜곡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망상장애의 근거로는 김길태가 ‘암흑대왕이 자신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망상과 암흑대왕이 자신의 밥에 페니실린을 넣었다며 구치소 및 치료감호소에서 식사를 기피하는 등의 피해망상을 갖고 있는 것을 들었다. 이와 더불어 교도소 수감 중 2005년 4월부터 할리페리돌 20mg을 복용하는 등 높은 용량의 항정신병 약물치료를 한 사실을 근거로 꼽았다. 이를 토대로 2차 정신감정인은 김길태가 범행당시 심신미약 상태인 것으로 판단했다.


3차, 측두엽간질·망상장애 없다

이처럼 상반된 감정이 나온 가운데 실시한 3차 정신감정에서는 공주치료 감호소에서 시행한 4차례의 뇌파검사도 정상이었다며 서울대병원에서 시행한 24시간 모니터링 뇌파검사, MRI 등에서도 측두엽 간질을 의심할만한 소견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측두엽 간질발작상태에서는 복잡한 수의적 행동과 주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불가능하다며 범행이 간질 발작기에 발생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또 김길태가 환청 환시 등 환각 증상을 경험할 당시에도 의식이 명료했다고 지적했다.

망상장애에 관해서도 망상장애 범주에서 벗어나는 다소 기괴한 형태의 망상으로 일반적인 망상장애인 과대형, 색정형, 피해형, 질투형 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마왕 등과 같은 불안과 피해의식이 암시되는 반응은 반복되나 정신병적 수준의 심각한 사고장애 가능성과 거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같이 오락가락하는 정신감정에 대해 재판부는 “현대의 정신과학 및 의학의 불완전성이 고려되어야 한다”며 어느 정도 심신이 미약한 상태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판결 결과에 대해 국민들은 수긍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재판부로서도 이러한 민심을 잘 알고 있지만 법 이론은 또 다른 논리라는 주장이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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