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가져가려다 차갑게 돌아온
어느 20대 피자 배달원의 죽음


지난해 12월 12일 한 피자헛 체인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던 최모(24)씨는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몰고 배달에 나섰다가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 택시와 부딪혔다. 이후 일주일 넘도록 의식불명 상태에 있던 최씨는 결국 9일 후인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12시 35분경 사망했다. 최씨는 부족한 대학 등록금을 보충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피자 배달을 해 왔고 사고가 난 당일이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지난해 12월 2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이륜차 관련 산업재해 발생 현황 ’에 따르면 피자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전체 재해의 26.7%(1890명)로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배달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피자는 따뜻한 피자를 원하는 고객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주문 후 20분 또는 30분 내 배달을 약속하고 있어 다른 배달 보다 배달원들의 사고 위험성이 더 높은 편이다. 더구나 피자 배달원의 연령대가 주로 10~20대로 대부분이 오토바이를 이용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피자 배달원에 대한 안전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날씨는 춥고 밖에 나가기는 귀찮고…. 그래서 겨울은 배달 음식 주문이 유독 많은 계절이다. 이에 따라 각 음식점의 배달원들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서울 강남 소재 한 피자전문점에서 일하는 박모(19)군은 눈 오는 날이 가장 두렵다고 한다. “점장님이 배달 주문이 많이 밀렸다면서, 재촉을 하시는데 길은 빙판이고, 행여 사고라도 날까봐 조심스럽다”며 “빨리 배달하기 위해 생명을 단축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숨을 쉰다.

다른 배달원들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말 서울에 눈이 많이 내려 대설특보가 내려졌을 때도 눈길에 상관없이 배달에 나섰다는 김모(22)씨는 “다음 학기 복학 자금을 마련하려고 일하고 있는데, 요즘 같은 날씨가 계속되면 아무래도 배달 나서기가 무섭죠”라고 말하며 다음 배달을 준비하고 있었다.


30분 배달의 위험, 외국은 이미 시행 금지

1990년 한국에 진출한 도미노피자는 20년간 배달 보증제를 시행하고 있다. 도미노피자 홈페이지에는 ‘가장 맛있는 피자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은 오븐에서 나온지 30분 이내. 도미노피자는 갓 구워낸 맛 그대로 30분 안에 고객을 찾아간다. 도미노피자는 고객님과의 30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등의 문구를 내세우며 피자 배달 마케팅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다른 피자업체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한국피자헛은 ‘30분 배달 보증제’ 및 ‘45분 무료 배달제’를 공식적인 마케팅 프로그램으로 시행한 적은 없으며, 현재도 시행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 회사 노조 등에 따르면 처음 피자 배달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30분 내 배달제도’를 교육하는 등 암암리에 30분 내 배달을 장려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래 30분 마케팅은 매장에서 갓 만든 피자를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통상 피자주문 후 최종 제품화까지 20분 정도가 걸린다고 볼 때 피자 배달원은 10분 안에 배달을 해야 하는 셈이다.


사고빈발·보는이도 아찔 피자헛 배달원만 3명 사망

이 제도를 맨 처음 시행된 미국 도미노 피자의 경우 배달 중 안전사고 발생 등을 이유로 현재는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안전사고가 계속적으로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계속 운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들의 비판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해 12월 23일에는 ‘청년유니온’(청년노동의 질 향상을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청년공동체)이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30분 배달제’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청년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익을 챙기려는 업체와 대책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고용노동부에 책임이 있다며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배달원에게 신속만 강조하는데 고개서비스 만큼 배달노동자의 안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달 28일에는 민주노총 산하 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서비스 연맹)이 성명서를 통해 “서울 독산동에서 발생한 오토바이 배달 사망사고는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정신에서 생겼다”며 “정부의 조속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 한해 피자헛 내 배달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은 대구 1건, 서울 2건으로 총 3건에 달한다. 그러나 피자헛 측은 “2010년 발생한 사망사고는 총 2건이고 이는 자사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편 운전자의 과실로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배달 중 교통사고는 (30분 배달제 때문에) 항시 불안한 배달 환경이 문제”라며 “업체들의 관행과 고용노동부의 지지부진한 대책이 진짜 문제”라고 반박했다.


고용노동부 간담회 안전캠페인에 그쳐

최씨의 사망을 계기로 피자업계의 ‘30분 배달제 폐지’ 운동이 진행되자 지난해 12월 28일 고용노동부는 ‘프랜차이즈 음식 업종 주문배달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간담회’를 가지고 대책을 논의했다. 간담회엔 피자·치킨·패스트푸드 등 프랜차이즈 본사 16개가 참여해 주문배달 사고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나올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막상 나온 대책은 안전 캠페인이 대부분이어서 실망감을 안겨줬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세부 안전대책을 보면 ▲텔레비전·라디오·지하철 방송 등을 통해 배달 재해 관련 안전문화 운동 전개 ▲음식 주문 때 “빨리 배달해 주세요” 대신 “안전하게 배달해 주세요”고 당부하도록 하는 등 범국민 캠페인 진행 등이 핵심 내용이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배달사고를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30분 배달제’를 폐지하고, 빗길이나 눈길 오토바이 배달 금지 등의 기준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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