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이래 최대 위기에 처했던 롯데그룹의 ‘형제의 난’이 일단 동생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끝난 듯 해 보이지만 아직은 단언할 단계는 못된다. 형인 신동주 지지 세력이 가족을 중심으로 아직 만만찮은데다가 지분구조 역시 신동빈체제가 반석위에 놓이기는 녹록찮은 형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국내 민심이 롯데를 순수 한국재벌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형제의 국적마저 혼란을 느끼는 터다.
이런 한국재벌그룹의 ‘오너 리스크’는 롯데 뿐 아니다. 한진그룹의 이른바 ‘조현아 땅콩회황’사건으로 드러난 ‘로얄 패밀리’의 기업 군림이나, 또 SK그룹의 최태원 회장 수감 당시의 옥중경영 논란이 모두 국민정서에 재벌기업을 더욱 격리 시킨 게 사실이다. 이 오너 리스크는 한국 증시가 주요국에 견줘 제값을 받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물론 오너 리스크의 근원은 한국 재벌가의 불투명한 지배구조 탓이다. 과거의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 요인이었던 북한과의 대치 등 지정학적 요인을 그러한 지배구조 문제가 크게 앞지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코스피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재벌가의 후진적 지배구조 현실을 반영한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곪아터지기 직전의 재벌 문제가 한국의 자본 시장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우려는 갈수록 더하다.
외신들도 족벌기업의 승계 분쟁이 한국에서 가장 빈번하고 기업 이미지 타격이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거대 재벌기업 40곳 가운데서 18개 기업에서 경영권 승계 분쟁이 발생했다고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서 보도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현대그룹을 세 갈래로 쪼갠 ‘왕자의 난’이 가장 극심했던 분쟁중 하나로 지적됐다.
이 외신매체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지분을 더 얻으려는 형제들로 부터의 소송을 대비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형제간 진흙탕 싸움을 피하고 평화적인 그룹 분리를 하려고해도 거미줄 같이 복잡한 구조 때문에 해법을 찾지 못한다는 지적은 벌써 부터였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재벌구조 전체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막장 드라마 같은 재벌가의 ‘왕자의 난’이 끊이지 않고 회장 승계자의 독단적 황제경영이 지속되는 한 한국의 부자들은 국민 눈 흘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쥐꼬리 지분율의 오너 일가가 수십 개 넘는 계열사, 10만 명 넘는 직원들에 대한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건 상식으로는 이해 못될 구조다. 이런 대기업 지배구조의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창조경제’는 시작부터 실패다.
우리가 강소국(强小國)이 되기 위한 창조경제의 첫걸음은 대기업의 지배구조부터 개혁돼야 한다. 며칠 전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 자신의 전 재산 200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내는 ‘통일 나눔 펀드’ 캠페인을 보면서 이 같은 결심을 했다고 한다.
흔히 하는 식의 자기 이름이나 호를 내건 별도의 기부재단을 만든 게 아니고 기존의 재단법인에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할 수 있는 이런 기업가가 있는 한 대한민국은 얼마든지 새로운 재벌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썩은 살은 때가 되면 반드시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고, 그 자리는 다시 새살로 메워질 것이란 희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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