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무림고수’들 재등장하나

◀ 지난해 12월 28일 전기통신기본법 위헌판결 직후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헌법재판소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32)씨 사건의 처벌근거가 된 전기통신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28일 박씨가 미네르바 사건에 적용된 전기통신법 제47조 1항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7(위헌)대 2(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려 미네르바의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이번 판결로 표현의 자유 보장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날 판정 이후 이 법 조항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면죄부를 받게 되고, 형 집행이 끝난 사람들은 재심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중인 사건들도 검찰의 공소권이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촛불,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사태 등과 관련해 인터넷 상에 허위 사실을 유포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 근거가 사라져 새로운 법 기준을 확립할 때까지 법적 공백 사태가 불가피해졌다.

문제가 된 이 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규정돼 있다.

헌재는 이번 선고에서 “공익을 해할 목적에서 ‘공익’ 개념이 불명확하며 모호성, 추상성, 포괄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규제되지 않아야 할 표현까지 다함께 규제하게 된다”며 “범죄의 성립 여부를 법관의 자의적인 해석에 맡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므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미네르바 처벌근거 소멸

박씨는 2008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드디어 외환보유고가 터지는구나’ 와 ‘대정부 긴급 공문 발송 - 1보’라는 글을 게시했다. 당시 정부는 허위의 글을 유포해 이를 10만 명이 열람, 정부의 외환정책 및 대외지급능력에 대한 신뢰도와 우리나라 경제 대외신인도를 저하시켰다는 이유로 박씨를 기소했다. 박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2009년 5월 14일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의 위헌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었다.

박씨의 경우처럼 1심 선고가 이미 내려진 경우에는 공소취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급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야한다. 하지만 박씨는 이미 무죄를 선고받아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조항에 대해 헌법소헌심판을 청구한 김모 씨의 경우 진보신당 홈페이지와 다음 카페 등에 ‘경찰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집회 진압 과정에서 시위 여성을 강간했다’는 허위의 글을 올려 1심에서 전기통신법 제47조 1항에 의거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무죄 판결을 받게 됐다.


기소된 사건 모두 무죄

이번 헌재 결정의 파장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폭격 사태와 관련해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한 사람들 역시 이 조항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광우병 촛불시위 등으로 2008년 28명, 2009년 36명이 기소됐다. 최근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28명이 이 조항으로 기소됐었다. 유모씨 등 28명이 ‘예비군 소집명령이 내려졌다’는 내용의 허위 문자메시지를 지인에게 배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번 판결로 검찰의 공소취소나 법원의 무죄 선고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역시 공소를 취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당 법조항으로 형이 확정된 경우라 할지라도 소급 적용돼 무죄 판결이 내려지게 된다.

미네르바가 ‘부분적 허위사실’을 인터넷 상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구속 된 뒤 국내 인터넷 토론장은 된서리를 맞았었다. 정부 정책 등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던 ‘무림의 고수’들이 활동을 중단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헌재의 판결로 인터넷 논객의 입지가 넓어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미네르바 박대성씨 서면 인터뷰

“터널 끝에서 한 줄기 빛을 본 듯한 기분”

미네르바 박씨는 [일요서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심경과 최근 근황에 대해 전했다.

박씨는 헌재의 위헌결정에 대해 “개인적으로 지난 2년간 기나긴 어둠을 터널을 지나 터널 끝에서 한 줄기 빛을 본 듯한 기분으로 감격스럽고 기쁘다”며 “헌재의 올바른 판단에 감사드리며 아직까지 한국에서 법의 정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재확인하는 뜻 깊은 기회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구시대적인 법으로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 내심 원망도 많이 했지만, 이러한 과정이 보다 더 좋은 사회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인 전환기로써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구체적인 즉답은 피했다. 박씨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봉사하고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남을 돕는 정신으로 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미네르바’로 다시 활동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인터넷 환경과 IT 기술 진화를 통해 더 이상 아고라에 글을 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고라에 글을 써 구속까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는 진화해가는 IT 네트워크의 기술의 중간단계일 뿐 최종 종착점은 아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박씨는 현재 박찬종 변호사가 발행인으로 있는 아시아 경제연구원(AERI)의 연구원 등과 함께 매주 월요일마다 경제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다. 박씨는 “시사 주제들을 통해 한국 경제를 글로벌 마켓에 맞추어 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전 국민이 ‘중산층’으로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일명 ‘중산층 국가론’이 최종 이슈가 될 것이며 그로 인해 경제 성장률을 과실을 일부 특정 계층만이 아닌 모두에게 돌아가는 방안 모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행동하는 중산층, 사고하는 직장인이라는 타이틀로 독자들에게 ‘행동이 최고의 전략’이라는 말을 실행에 옮겨 행복을 쟁취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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