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기억과 망각, 이 두 단어는 꽤 상반된 코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기억과 망각은 둘 다 자기 방어기제에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가 원하는 기억은 ‘안전한 방식’으로 보호하려 하지만 그렇지 않는 기억은 수정·삭제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망각이다.

‘비움’이 주는 현자의 철학적 자각이 단순하지만 명쾌한 답을 가져다 주듯이 ‘잊음’이라는 단순한 명제는
‘망각’이라는 메카니즘을 통해 긍정적 방향으로 삶을 순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사실 기억하는 법에 대한 훈련은 익숙해도 망각에 대한 훈련이 있다면 생소하기만 하다.
기억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 망각이라고 지적한 저자는 “망각은 우리의 기억 가운데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또한 “억압된 기억은 어떤 운명에 처하고 어디에 머무를까?” “절대적 기억이라는 가설이 매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가면서 뇌 연구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 ‘망각’을 포괄적이고 명료하게 다루고 있다.

드라이스마에 따르면 우리의 기억은 말을 듣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한다. 다시 말해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배후에 숨어 있는 메카니즘을 인지하기 어렵다는 사실 역시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결국 모든 기억은 언젠간 소실되지만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은 무의미한 것일까?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나 사람을 사진으로 찍거나 그림으로 그리는 것 역시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기억을 가꿀 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기억하고자 하는 데 쏟는 헌신적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망각의 종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서전적 기억의 망각이다. 이는 우리의 개인적 경험을 붙들기 위해 노력하는 기억 유형으로 만약 개인적 체험을 놓치면 걱정에 휩싸여 더욱더 자신에게 몰두하게 된다고 전한다.

1장에서는 바로 이런 내용을 다뤘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잊지만 태어나서 2~3년 동안처럼 다채롭게 망각하지는 않는다. 최초의 기억은 무엇보다 망각을 강조한다. 잘 들여다보면 최초의 기억 은 이미 망각을 전제로 한다.

2장은 꿈과 관련한 기억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난 후 잠깐 동안 꾸었던 꿈 때문에 혼동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꿈이 무엇인지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이 조각들이 얼마나 제각각 흩어져버리는지 알아차린다. 이처럼 두 번째 주제는 병리학적 형태로 나타나는 망각은 기억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인식으로 안내해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 다우어 드라이스마는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다. 동 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한 그는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 연구를 수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소개된 바 있는 《기억의 메타포》는 국제적으로 큰 호평을 얻은 기억의 은유적 본질을 담은 책이다. 이외에도 자전적 기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와 기억에 관한 통념을 깨트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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