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훌륭한 아버지 될 기회 주겠다” 집행유예

아내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훌륭한 남편이 될 기회는 잃었더라도 훌륭한 아버지가 될 기회를 주는 것은 필요하다”며 실형을 면해줬다.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김인욱 부장판사)는 지난 3일 양모(21)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양모씨는 지난 2008년 11월 열 아홉 살 아니에 20살이던 여성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이들 부부는 보증금 300만 원짜리 월세방에서 열심히 생활했지만 20살 남짓한 초보부부는 양육 문제로 인한 잦은 갈등을 겪어왔다.

부부싸움은 날이 갈수록 잦아졌고 양씨는 아내를 폭행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모멸감을 느낀 양씨의 아내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를 알렸고, 이후 양씨를 강간죄로 고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양씨가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을 전했고 양씨의 아내도 수감된 양씨의 모습을 보면서 연민의 정을 느껴 서로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주택의 보증금 문제와 신용카드 이용대금 납부 문제 등으로 양가 가족들까지 이들 부부의 문제에 개입하게 되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갔다. 결국 양씨의 아내는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을 진행 중이던 지난해 6월 이혼했다.

양씨 사건은 부부강간죄에 실형이 선고된 첫 사례였다.

항소심 재판부도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면서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요구받은 경우는 배우자의 성적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는 의무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며 “상대방 배우자의 기본적 인권에 속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아내와 진실되게 대화하고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자녀를 낳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결혼생활을 시작한 데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며 “훌륭한 아버지가 될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기에 엄벌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러 집행유예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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