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의 종북·친북 세력의 정체 북한 스스로 공개”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많은 국민이 북한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천안함 격침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한민족 우리 동포라고 생각해왔던 이들조차 이제는 북한을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주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시점에 북한에 관한 책 한권이 출간돼 주목을 끌고 있다. 최근 비봉출판사가 펴낸 책 <북의 지령 따라 움직이는 남쪽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1980년 5월 18일 광주항쟁이 끝나고 2년 뒤인 1982년 4월 북한의 평양 조국통일사에서 펴낸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이라는 원서를 남한 문체로 바꿔 그대로 옮겨 담은 것이다. 비봉출판사측에 따르면 새롭게 출간하는 과정에서 원본의 내용을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빼거나 더한 것은 없다. 다만 남한에서 이해하기 힘든 북한의 단어 등을 남한 어법에 맞게 고친 게 전부다.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책 속에는 제목에서처럼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남한 개인과 단체들이 북한으로부터 어떤 지령을 받고 어떻게 움직였는지 상세히 드러나 있다.

본래 원서 ‘주체의 기치 따라…’는 북한 독자들과 일부 남한의 주사파들을 위해 펴낸 것이다. 원서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80년 광주항쟁까지 남한 사회의 각종 반정부 소요사태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사태들에 북한이 개입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것이 일종의 선전술의 일환인지 사실인지는 불확실하다.

해방당시 38선 이남에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된 이후의 공산적화통일의 시도들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1948년 여수·순천의 군인반란 사건, 1950년 6·25전쟁, 1956년 12월에 창당된 <진보당> 당수 조봉암의 실체, 1960년 4월의 <4·19학생의거>와 이승만 정권의 붕괴, 장면정권 하에서의 진보적 정당들의 출현과 각종 단체의 결성, 조용수에 의한 <민족일보>창간, <남북학생회담> 추진과정과 그 실상, 1961년 5·16 군사정변 등이 북한의 대남적화통일공작과 관련해 북한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다.


북한 지령 따라 남한 혼란 유발

원서는 북한 사람들과 북에서 남에 침투시킨 혁명가(간첩)들 및 좌익인사들에게 김일성의 위대성을 주입하고, 그의 대남 적화통일 이론인 <주체사상>에 대한 충성을 강화시키려는 의도에 부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관련된 사건 내용을 그 목적에 따라 상당 부분 왜곡한 것이 적지 않다.

예컨대, 해방 이후 남한에서 이루어진 반정부 활동이나 시위행위 등을 모두 <위대한 김일성 수령의 정치>를 받기 원하는 남한 인민들의 투쟁인 것처럼 서술함으로써 남한 국민들의 순수한 민주화 운동까지 친북활동으로 꾸미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우리의 현대사를 위한 역사적 사료라는 데 있다. 해방 이후 남한정부수립이전의 사건들과 4· 19 등 그 이후의 사건 그리고 박정희 사후 5·18 광주항쟁까지에 대한 북측의 입장과 개입 전모를 원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런 내용은 현재 핵무기를 내세워 고도의 외교전술을 펴는 북한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참고할 만하다.

특히 원서에 드러난 <진보당> 조봉암의 실체, <민족일보> 조용수, <통일혁명당> 창당사건 등은 아직도 남한에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어서 시선을 집중시킨다.

뿐만 아니라 원서는 우리사회에서 이른바 ‘종북주의’로 꼽히는 집단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1969년에 창당된 <통일혁명당>의 강령이 참고가 된다.

당시 불법적 지하조직으로 창당되었던 통혁당은 남한 정부의 탄압으로 와해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해서 대남적화 통일을 위한 지하활동의 총본부로 활동해 오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합법적인 정당 또는 각종 단체의 모습으로 다시 부활했다. 정부의 한 기관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 통혁당의 맥을 잇고 있는 단체는 2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광주항쟁에 북한 개입했나

남한 내 한 정당의 경우 당 목표와 강령이 통혁당의 12개조 강령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북한의 지령에 따라 만들어진 통혁당의 강령을 현재 남한 정당이 버젓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종북세력의 침투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하게 한다. 통혁당이 남한 정부에 의해 와해된 직후 3호청사 부장회의에서 행한 <김일성 비밀교시>를 살펴보면 이렇다.

“통혁당 지도부가 파괴됨으로써 우리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김종태(통혁당 창당을 주도한 인물. 검거 뒤 재판 후 사형됨) 동무는 적들의 고문에 의해 옥사했지만 혁명가로서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탈옥도 시도하고 법정투쟁도 잘 했습니다. 김종태 동무가 이렇게 묵비권을 행사하며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기 때문에 그 하부 조직들이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이 동무에게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은 조선 혁명가들과 조직 성원들이 김종태 동무처럼 옥중에서도 혁명적 지조를 끝까지 지킬 수 있습니다.”

비봉출판사의 <북의 지령 따라…>에는 부록이 실려 있다. 출판사의 박기봉 사장은 “시간상 제약으로 이 책의 본문을 다 읽어볼 수 없다면 본문의 마지막 제 4장과 부록만은 꼭 읽어보기 바란다”고 이 책의 서문에서 당부하고 있다.

제 4장에 담긴 내용과 부록의 <광주항쟁에 관한 탈북군인들의 증언>과 <광주항쟁에 관한 미국 해리티지 재단의 보고서>는 독자를 크게 당황케 한다.

이와 관련해 부록을 살펴보면 전 함경도 금야군 출신의 탈북군인인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의 증언이 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광주항쟁 당시 혼란을 확산시키기 위해 북한 특수부대 군인들이 극비리에 광주에 파견돼 진압군과 총격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남한에 박정희 암살 등과 같은 주요 사건이 터질 때에도 북한은 최정예 특수부대를 파견, 지하조직과 연계해 혼란을 부추겼다고 한다.

이 밖에도 광주항쟁 당시 인민군이 개입한 것은 북한에서도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며 항쟁 당시 북한은 TV를 통해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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