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의 ‘불신임·퇴진 운동’ 발언이 친노 세력 재결집을 위한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최근 잇따른 대형 사건으로 사면초가에 처한 여당과 청와대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강도 높은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8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향해 “서울 한복판인 정부 청사 앞에 거대한 빌딩을 가진 신문사들이 반대여론을 주도한다”면서 “이는 대통령 불신임·퇴진 운동”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도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행정수도 이전 반대는)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거부감 내지, 지난 대선결과 불인정 의도가 있다”고 바통을 이어 받았다.

김 실장은 또 수도이전 반대세력에 대해 ‘노 대통령을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했던 분들이 연계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대표도 “수도이전 반대는 정권 흔들기이자 지역주의적 색채도 있다”면서 “저변에는 수도권 부유층과 상류층의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측면이 많다”고 공방을 부추겼다. 이처럼 지난 8일 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청와대와 여당은 ‘수도이전 반대 세력’은 ‘탄핵주도 세력’·’수도권 부유층’이란 논리를 일관되게 펴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는 “수도 이전은 국가 대사와 관련된 것인데 이것이 대통령을 인정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며 “발언의 의도가 국민들의 입막음 의도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이 최근 와해조짐을 보이고 있는 친노 세력의 재결집을 수도 이전을 매개로 시도하고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최근 위기상황을 맞고 있는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친노세력의 결집을 노리고 있다”며 “그동안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이런 노림수에 여러번 당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결코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의례적인 논평 이상은 내놓지 않고 있다. 그간 김선일씨 사건과 정동채 장관 인사청탁 의혹, 비례대표 장복심 의원의 공천헌금 등의 잇단 악재로 친노 세력이 급격히 와해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또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도 급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수도 이전 반대 세력을 탄핵 주동 세력으로 몰아 국민들로 하여금 과거 탄핵의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친노 세력 재결집과 열린우리당 지지율 상승을 위해 청와대와 여당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행정수도를 편가르기식 주장으로 풀 수는 없는 문제임에도 청와대와 여당이 이를 주도해 토론 자체를 아예 봉쇄하려 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도 노 대통령은 최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치공세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지난해 국회서 관련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실수가 아니고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을 사과 한마디로 무효화하려는 것이 실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수도 이전 반대는 민주적 국정시스템을 흔드는 정치공세이며, 수도권과 지방을 대립시켜 신지역주의를 조장하는 불순한 의도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비교적 현정권과 대립관계가 약한 한겨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수도이전 반대가 55.3%로 찬성 37.9%를 웃돌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행정수도 이전 반대가 불신임 또는 퇴진운동으로 느끼느냐’는 질문에 대다수의 응답자가 ‘공감하지 않는다’(73.5%)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의도와는 달리 네티즌들도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네티즌은 “노 대통령이나 천정배 원내대표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사람들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 사실 노 대통령의 계산된 발언의 효과가 그다지 없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수도이전 위헌 헌법소원 대리인단’(간사 이석연 변호사)은 12일 오전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또 다시 헌재의 판결에 여론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