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서 복역 중인 김규열씨‘나는 결백하다’통곡

김규열씨가 필리핀 시티 젤 교도소에서 썼던 편지.

대사관 무성의에 네티즌들 들고 일어나한국인 선원이 1년여 넘게 필리핀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큰 논란이 일고 있다.무엇보다 이번 경우 근래 벌어졌던 온두라스 한지수씨 사건, 필리핀 조광현씨 사건처럼 해외 한국인 인권 보장 실태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는 케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말 한 인터넷 매체가 필리핀 교도소에 전남 여수출신의 한국인 선원 김규열(51)씨가 1년째 억울하게 감금당하고 있다며 김씨가 지난해 8월 쓴 자필편지를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김씨는 2009년 12월 필리핀에서 마약 소지 혐의로 현지 경찰에 체포돼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돼 있으며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김씨의 편지에 따르면 상황은 복잡하다.


잠시 조사할게 있다더니 마약과 함께 사진 촬영

김씨는 지난해 8월 한국인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식당에서 식사를(음식을) 사서 나오는데 젊은 필리핀인 3명이 ‘잠시 조사할게 있다’면서 갑자기 승합차에 태웠다”면서 “한 건물로 데려가 수갑을 뒤로 채우더니 테이블 위에 마약과 현금을 가져다 놓고 사진을 찍었다”고 밝혔다.

그는 “‘왜 거짓으로 죄를 만드느냐’고 항의하자 경찰이 계속 구타를 하더니, 권총을 머리에 들이대고 ‘죽여버린다’고 했다”면서 “2010년 1월 27일 마닐라 시티젤 감옥으로 이송된 뒤 현재까지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감옥에 알아보니 나의 죄명이 ‘마약운반’이라고 하는데,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걸고 (이같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편지에서 “세숫비누, 칫솔 등 생필품이 없으며 치약이 없으니 당연히 칫솔질도 못하고 감방에 들어와서 3개째 이를 손으로 뽑았다”면서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현재의 열악한 상황을 전했다.

김씨의 사정은 지난해 12월 24일 인터넷 매체 ‘딴지일보’가 공개한 자필 편지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앞서 한지수씨 사건이나 조광현씨 사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가운데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발행한 것이 아니냐며 외교통상부와 주필리핀 대사관 측을 질타하는 소리가 잇달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게시판에서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외교통상부, ‘영사가 정기적 교도소 방문’

이에 외교통상부는 지난해 12월 25일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필리핀 아국인 수감자 김모씨 관련 상황 및 외교부 조치 내용’이라는 제목의 공지 글을 올렸다.

이 글에 따르면 주필리핀 대사관은 필리핀 사법당국과 접촉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요청했고, 영사가 교도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김씨의 건강상태, 애로사항 및 인권침해 여부 등에 대해 점검한다고 했다. 치약, 라면, 비누 등 생필품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또 영사가 지난해 9월 추석을 앞두고 김씨를 면담해 의약품 등 필요한 물품이 있는지 문의했으나 김씨가 특별히 필요한 것은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딴지일보’에 따르면 김씨는 여전히 생필품이 없어 양치질도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또 교도소에서 나오는 맨밥을 도저히 먹을 수 없으니 간장과 소금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외교통상부의 발표와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문제는 지금까지 1년 여간 김씨의 문제가 그대로 방치되다시피 한 채로 외면돼오다가 살인누명을 쓰고 필리핀 마닐라 교도소에서 5년 동안 형을 살다 지난해 12월 17일 무죄선고를 받고 출소한 조광현(35)씨와 그를 도운 필리핀 교민 구정서(33)씨에 의해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김씨의 석방을 위해 뒤고 있는 사람도 조씨와 구씨다.

조씨가 김씨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유는 자신이 바로 김씨와 같은 억울한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당시 발벗고 나서준 사람이 바로 구씨였다.

8년간 프랑스 외인부대 중사로 복무한 뒤 전역한 조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는 한국인 사장의 경호원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05년 11월 사장 집에서 발생한 가정부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미결수 신분으로 필리핀 마닐라 교도소에 수감됐었다.


같은 처지였던 조광현씨와 교민 구정서씨 석방 앞장

하지만 지난해 7월 필리핀 현지 교민들에게 조씨의 수사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후 필리핀과 한국에서 ‘조중사 구하기’ 운동이 벌어졌다. 조씨는 지난해 10월 구씨가 보석금 60만 페소(약 1550만 원)를 후원해 석방된 뒤 지난해 12월 17일 필리핀 마닐라 법원으로부터 무죄선고를 받았다.

당시에도 주필리핀 대사관 측의 무성의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조씨는 국내 친지에게 보낸 글에서 “저는 억울한 누명을 썼음에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2006 ~2007년 1년 동안 어처구니없게도 통역이 없어 재판이 진행되지 못했다”, “대사관은 1년 중 추석, 설 명절에만 단 2회 면회를 와서 라면 1박스만 내려놓은 채 귀찮다는 듯 길면 10분 정도 면담하고 돌아갔다. 애로사항을 말하면 (대사관 직원은) 노트에 적기는 하나 다음에 아무런 후속대책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온두라스에서 살인 사건에 연루돼 2년간 억류됐던 한지수씨의 경우도 우리 정부의 재외 국민 보호에 문제점을 던져준 사건이었다.

한씨는 2008년 8월 22일 온두라스 로아탄섬에서 발생한 네덜란드 여성 사망 사건에서 살인 누명을 쓰고 현지에서 재판을 받은 끝에 지난해 11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스킨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기 위해 2008년 5월 온두라스로 건너간 한씨가 살인 혐의를 받게 된 것은 그해 8월 22일 사건 때문. 같은 아파트에 살던 호주 출신 30대 남성이 데려온 20대 네덜란드 여성이 갑자기 몸에 이상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사망했다.

살인사건으로 판단한 현지 경찰이 호주인 남성을 체포했지만 혐의를 밝히지 못했다. 특별한 혐의를 받지 않았던 한씨는 이집트로 이동해 생활하던 중 2009년 8월 미국행 비행기를 타려다 공항에서 체포됐다.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이 네덜란드 여성 살인 혐의로 한씨에 대해 수배령을 내린 것이다. 온두라스로 압송된 한씨는 같은 해 12월 가석방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으며 현지 교회에서 지내 왔다.


미국은 자국민 석방 위해 전직 대통령도 나서

한씨는 귀국 후 한 회견에서 “정부 당국자들이 ‘시스템이 없다’, ‘전례가 없다’면서 외국에서 도움을 바라는 한국인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사소한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고 주문하며 “정부는 진정한 사명감을 갖고 해외에서 어려움에 처한 한국인들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미국의 자국민 보호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미국은 2009년 북한에 억류된 자국 여기자 2명을 석방시키기 위해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의 전격 방문하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 억류됐던 미국인을 석방시키기도 했다.

현재 필리핀 형무소에 구치돼 있는 김씨는 편지에서 이렇게 현재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이곳 감옥소에서 아침식사는 고양이 죽, 점심·저녁으로는 개밥을 먹습니다. 거지(거렁뱅이)들에게 거저준다 해도 못 먹는 음식입니다. 본인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굶어 죽을 수 없어 밥을 꾸역꾸역 입안에 집어넣으며 두 눈 꼭 감고 정말 피눈물 흘리면서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본인 몸무게가 95kg(별명 :뚱보선장, 도구통 선장)이었는데 현재는 65kg정도 나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중략) 생필품이 없어 맹물에 세수와 빨래를 하고, 치약이 없어 당연히 칫솔(질)도 못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감방에 들어와서 이빨 세 개를 손으로 뽑았는데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김규열 구명카페 운영자 송재호씨는 “김규열씨 사건은 대중들이 알게 된 이제부터가 시작” 이라면서 “지난 11일 구정서씨와 방기일씨가 마닐라 시티 젤 교도소로 가 면회했다”고 말했다. 김규열씨 목소리를 녹취해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사건을 파악해 보겠다는 것이다.

구정서씨와 동행한 방기일씨는 김씨에 앞서 마약혐의 누명으로 시티 젤 교도소에 3년 반 동안 갇혔던 사람이라고 송재호씨는 전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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