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가 23년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다

지난 14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수천 명이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벤 알리 대통령은 이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중부에 있는 인구 4만 명의 소도시 시디 부 지드에서 노점상을 하던 26세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기도했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부아지지는 경제난으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과일 노점상으로 겨우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점 단속에 나선 경찰이 그의 뺨을 때리고 과일 수레를 부순 뒤 외상으로 구입한 과일 200달러어치를 압수했다. 시청을 찾아가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절망한 부아지지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주정부 청사 앞에서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댕겼다.

70년대 전태일의 분신을 연상 시키는 부아지지의 분신 사실은 곧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살인적 실업률에 신음하던 튀니지 국민들은 부아지지의 분신 소식에 들고 일어났다. 튀니지의 공식 실업률은 14%. 하지만 이 숫자를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튀니지 경제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특히 15~29세 청년 실업률은 30%에 이른다. 성난 민심은 달아올랐고 오프라인 시위대가 조직됐다.


노점상 단속 항의 분신

튀니지 독재 정권은 부랴부랴 관련 인터넷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고, 개인 정보를 해킹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국민들의 사이버 투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시위가 열흘 넘게 계속되자 자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은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사경을 헤매던 부아지지는 지난 4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민심은 더욱 달아올랐고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당황한 벤 알리 대통령은 시위 강경 진압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내무장관을 경질하고 2014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14일에는 내각 해산 및 6개월 내 조기 총선 실시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위키리크스, 대통령 부패 폭로

혁명 성공의 또 다른 열쇠는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제공했다. 대통령 일가의 과도한 재산 축적과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담은 외교 문서들이 튀니지 민주화 운동가들이 만든 ‘튀니리크스’(Tunil eaks)를 통해 확산되면서 혁명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더욱 북돋았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알려진 미 외교전문 중에는 2008년 6월 튀니지 주재 미 대사관이 미 본국에 보고한 `네 것은 곧 내 것’이라는 제목의 전문이 있었다.

이 전문은 “벤 알리 대통령 일가는 돈, 서비스, 토지, 자산, 당신의 요트까지 탐내며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또 벤 알리 대통령의 조카 두 명이 2006년 한 프랑스 기업인으로부터 요트를 빼앗은 사실도 거론했다. 이어 “튀니지 국민은 하급 관리들도 20디나르에서 40~50 디나르(약 28달러)까지 올려 급행료를 요구하고 있으며 최고위층의 부패는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고했다. 전문은 “하급 관리들 사이에 뇌물 수수가 만연해 있긴 하나 대통령 일가의 과도한 재산 축적과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부패 의혹이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로 고통을 받고 있는 튀니지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고 전했다.

2009년 7월 작성된 또 다른 외교전문에는 대통령의 사위 모하메드 사헤르 엘-마테리의 호화로운 저녁 만찬에 초대를 받은 로버트 고덱 튀니지 주재 대사의 보고내용도 있었다. 집에 온갖 고대 유물과 최고급 음식은 물론이고, 애완용 호랑이까지 키우고 있는 것을 본 고덱 대사는 마치 바그다드에서 사자를 키웠던 사담 후세인의 아들 우다이 후세인을 연상했다. 고덱 대사는 이에 대해 “튀니지 국민이 벤 알리 대통령 일가를 좋아하지 않고 일부는 증오하기까지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보고했다.

결국 부아지지가 분신자살을 기도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지난 14일 벤 알리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달아났고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튀니지의 23년 독재 체제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축출된 벤 알리 대통령은 1987년 무혈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뒤 독재를 통해 23년 넘게 권력을 장악해 온 인물이다.


쿠데타로 정권 잡아 23년 통치

직업 군인이었던 그는 1987년 총리직에 올랐다. 그해 그는 쿠데타를 통해, 195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 이래 튀니지를 통치해 온 하비브 부르기바를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당시 종신 대통령이었던 부르기바가 통치를 계속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고 노쇠했다며 ‘무능력’을 이유로 몰아냈고, 튀니지 국민은 그의 ‘무혈, 비폭력 쿠데타’를 환영했다.

하지만 정치 사회적 개혁은 얼마 가지 않았고, 야당을 억압하고 언론과 군대를 통제하는 한편, 헌법에 허용된 연임 횟수를 점진적으로 연장하면서 그는 통치를 강화시켰다.

인권단체들은 벤 알리 정부가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수백 명의 정치범을 투옥했다며 비난했지만 그는 이를 부인하면서 튀니지는 인권과 관련해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은 튀니지를 ‘경찰 국가’라고 표현하면서 벤 알리가 국민의 공감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과도 정부 앞날 불투명

그러나 튀니지의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벤 알리 전 대통령의 망명 뒤에 여·야 통합 과도정부가 구성됐으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모하메드 간누시 총리를 비롯해 옛 집권당인 입헌민주연합(RCD) 출신 인사들이 과도정부에서도 총리, 국방, 외무, 내무 등 핵심 각료직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수도 튀니스에선 시민 수천명이 항의시위에 나서는 등 반발이 커지자 푸아드 메바자 대통령과 간누시 총리 등 4명의 각료는 당과 정부의 분리를 위해 입헌민주연합에서 탈당을 선언하고 입헌민주연합도 벤알리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 6명을 제명했다. 뿐만 아니라 소요사태가 일어났을 때 튀니지의 교도소 두 곳에서 탈옥 사건이 일어나 재소자 1천 명 이상이 탈출하기도 했다는 보도도 있으며 이들 탈옥수뿐 아니라 벤 알리 전 대통령의 잔당 수천 명도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이는 등 치안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튀니지 주재 한국 상사원들과 교민들의 탈출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이집트 모리타니 알제리도 불안

한편 튀니지와 인접한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시민 혁명의 여파가 자국에 밀려들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실제로 호스니 무라바르 대통령이 29년째 집권하고 있는 이집트에서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카이로의 정부 청사 앞에서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 지난 17일에도 한 50대 남성이 빵 배급 쿠폰을 얻지 못해 카이로 시내 의회 건물 앞에서 자신의 몸에 석유를 끼얹은 뒤 불을 붙이기도 했다. 이집트는 경제성장이 꾸준하지만 국민 8000만 명 중 절반은 아직도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고 있다.

같은 날 북아프리카 서북부의 모리타니에서는 40대 남성이 대통령궁 앞에서 차량 문을 잠근 채 그 안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사업가로 알려진 이 남성은 정부가 자신의 부족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에 대해 항의해 분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리타니에서는 군부가 2008년 8월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적인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축출하고 권력을 잡았다.

튀니지와 국경을 맞댄 알제리에서는 지난 15일 30대 남성이 실업과 주택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해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이튿날 숨을 거뒀다. 알제리에선 최근 일주일 사이 4명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알제리 현지 신문 ‘엘 와탄’은 “수십억달러가 개발 프로그램에 투입됐지만 사람들의 일상적 삶에는 아무런 긍정적인 효과도 없었다”며 “사회적 불행의 징후가 온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최근 경기침체로 고통을 받고 있는 요르단과 수단, 오만, 리비아, 예멘 등지에서도 시위가 끊이지 않는데다 일각에서는 튀니지와의 연대론까지 나오고 있다.

[안석주 언론인]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