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 또 표를 갉아먹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판결에 반발하는 법치 부인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계산조차 없는 제1야당의 실체다. 지난 1월 ‘종북콘서트’ 논란을 빚으며 강제 출국당한 신은미 씨의 한 전 총리 응원 메시지를 무슨 복음처럼 활용하는 모습은 차라리 측은지심을 일으킬 지경이다.
“저는 구치소 안에서 여러분은 밖에서 진실이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어 내자”는 구치소 앞에서의 한 씨 발언은 모여든 150여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보인 광적 결기였겠지만 전직 총리라는 사람이 법치를 완전 부인한 작태가 온전한 국민들에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다만 이를 옹호하는 야권의 국회집단이 자기 이익 챙기기에는 법치를 구실로 한치의 뒷걸음도 없었다.
법원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 총리에게 실형을 확정하기까지 걸린 세월이 5년 한 달이다. 이는 그만큼 법원의 고심이 컸다는 얘기도 되고, 좌파와 야권의 반발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된다. 한 씨가 받은 9억 원 중 1차 3억 원 부분에서는 수표로 받은 1억 원이 한 씨 동생의 집 전세금으로 쓰인 물증이 확실해서 13명 대법관 전원이 유죄를 인정한 사실 앞에서도 한명숙 씨는 이 땅의 사법정의가 죽었기 때문에 상복을 입었다고 했다.
그가 이렇게 법치를 농락하고 다닐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마련해 준건 검찰이다. 물론 전직 총리에 대한 예우였겠으나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으면 4일 동안의 이런 꼴불견은 안 일어나도 좋았다. 법원 역시 만인에게 평등한 재판을 했다면 그가 19대 국회의원이 돼서 거의 임기가 다 할 때까지 주요 범죄인과 그의 보좌팀에게 세비 등 엄청난 혈세를 뺏기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1년간 지급되는 의원 세비가 1억 4737만원이면 한 씨가 확정판결 전까지 주제넘게 받아먹은 세비규모가 엄청나다. 또 인턴 2명을 포함한 보좌직원 9명이 받는 연봉이 도합 3억 9311만원이면 이들 모두가 도적질해간 혈세는 십수억 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을 빤히 알고 있는 새정치연합이 당 지도부와 소속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신공안탄압을 주장했다. 또한 지도부 주재로 ‘신공안탄압 저지대책위’ 회의를 가졌다니 그들 귀에는 ‘표’ 갉는 소리가 안 들리거나 아니면 한명숙 문제에서는 아예 귀를 틀어막은 모양이다.
한 씨는 수감되는 마당까지 백합꽃에 상복을 입고나와 지지자들 앞에서 뻔뻔스런 억지 미소까지 지어보였지만 대법원은 한민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검찰 수사당시 추궁 끝에 마지못해 시인한 것이 아니라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먼저 진술한 뒤 증거물이 제시됐다는 점에서 한명숙 씨의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사법 판결을 놓고 바깥에서 정치공방을 일으키는 한국정치의 현실이 낯 뜨겁기 만하다.
그러나 이렇게 된 책임의 절반 정도는 사법부가 져야할 몫이라고 본다. 사법부가 이번 공방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 사법 역사에 어느 때 이번 같이 5년1개월 동안이나 늑장 판결을 한 예가 있었더란 말인가. 이번 재판이 정치인들 보다 더 정치적이었다는 이유는 2010년 기소된 사건이 1심에서 2년 3개월, 항소심에서 11개월, 상고심에서 1년 11개월을 끌었다는 사실이다.
그사이 한명숙 씨는 아무런 법적 제지를 받지 않고 2012년 4월 19대 국회의 비례의원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4년 임기가 다 끝나가는 3년 4개월을 국회의원 신분으로 온갖 특혜를 누리도록 해준데 대한 책임이 마땅히 법원에 있다고 성토하는 목소리를 법원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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