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수사요원들의 어제와 오늘


과학수사 관련 직업이 지난달 5일부터 SBS에서 방영된 ‘싸인’을 통해 부각되고 있다. ‘싸인’은 사인 또는 사망 경위를 밝히는 법의학자와 검시관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다. 극 중 주인공들은 과학수사를 통해 사건의 단서를 찾고 범죄 실마리를 풀어간다.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근무 중인 요원들에 대한 궁금증도 크다. 이들의 과학 수사가 조기 검거와 지지부진한 사건해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발전된 기술과 성과에 비해 일선 경찰서의 근무 여건은 아직 열악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과학 수사계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았다.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관계자는 “한국과학수사는 대략 2000년을 기준으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90년대 후반 까지만 해도 과학수사에 대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도 않았고 그에 따른 투자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여건은 좋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과학수사요원에 대한 추가 전문화 교육과 장비의 업그레이드가 매년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과학수사요원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몇 십 년 동안 과학수사요원은 경찰서 내에서 가장 힘든 부서 중 하나였다. 과도한 업무에 따른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 16년 동안 감식요원(과학수사요원의 옛 명칭)으로 근무 했던 성모(66)씨를 통해 과거 근무 여건을 들어봤다.

성씨는 경기도내 경찰서에서 1978~1994년까지 감식요원으로 근무한 후 수사과, 호송출장소, 파출소 등으로 옮겨 다니면서 2005년 말 정년퇴직했다.

성씨는 “감식요원으로 일할 당시 경기도는 경찰서마다 감식요원이 한명밖에 없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사건을 처리하거나 휴무도 없이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번갈아 비번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안됐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는 것.

성씨는 “젊은 시절에는 호기로 일의 과중을 이겨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면서 “감식요원으로서 경력이 쌓여갈 즈음 결핵이 걸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5번 결핵 판정을 받았다는 성씨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80년대 초반 처음 앓았던 것 같고 2005년 마지막으로 결핵 판정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2005년 앓을 때는 왼쪽 폐를 완전히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는 성씨는 “그 후 2년 간 매일 아침마다 약을 복용했고 3년 동안 경상남도 하동군 지리산자락에 머물면서 완치를 위한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성씨는 주변 동료를 예로 들면서, 당시 감식요원 들에게 호흡기 질환과 결핵은 뗄 수 없는 관계였다고 한다. 이유는 사건 출동 시 해야 하는 지문감식 때문이었다. 지문 감식은 미세 분말가루를 붓으로 칠하면서 흔적을 발견하는 일인데 그 과정에서 눈, 코, 입 을 통해 가루가 들어가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성씨는 “마스크를 쓰면 좀 낫다 쳐도 한 번 작업이 끝나면 목이나 코에서 시커먼 가래가 나오곤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병원 의사들도 감식요원의 업무여건을 잘 모르다보니 적절한 조치를 내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1995년부터는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지 않았느냐” 하는 질문에 성씨는 “오랫동안 일하면서 병이 누적돼온 것 같다”고 증언했다. 감식요원으로 일하지 않던 1995~2004년 즈음에도 감기에 걸리거나 겨울이 되면 상태가 다시 악화됐다는 것이다.

성씨는 “아직도 술 담배는 꿈도 못 꾸며 정기적으로 폐렴 예방주사를 맞고 있다”고 전하면서 과거 열악했던 근무여건을 전했다.

그렇다면 과학수사계의 현재는 어떨까. 경기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관계자를 통해 그 근황을 들어보았다.

현재 경기지방결찰청에 근무하는 과학수사요원은 40명이다. 그리고 경기도 41개 경찰서의 과학수사요원들은 현재 188명(경기청 관할 138명, 2청사 관할 50명)이다.

이중 경기지방경찰청의 조직은 현장감식1·2·3팀, 화재감식팀, 심리검사팀, 행동과학팀, 검식팀까지 7개 부서로 나눠지고 있다. 각 팀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먼저 현장감식팀은 사건 현장에서 혈흔, 지문, DNA 등을 확보한다. 화재 감식팀은 화재 시 사건 경위를 분석한다. 심리 검사팀은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해 혐의를 입증한다. 행동과학팀은 프로파일러들이 범죄 행동을 분석한다. 검식팀은 변사체의 사인을 분석한다.

다른 부서에 소속된 경찰들이나 신입 경찰들이 이들 과학수사계로 발령 받기 위해선 모두 경찰 교육원을 거쳐야 한다. 신입 경찰의 경우 6개월 동안 첫 기본과정을 거친 후 파출소 또는 지구대 소속으로 근무하면서 경찰 교육원의 선발에 들어야 한다. 채택된 인원들은 과학수사 전문 과정의 입문 과정과 초급 과정을 배우면서 순차적으로 과학수사계로 배치된다. 이후 과학수사계로 발령 받은 경찰들은 매번 현장 실습을 하면서 과학수사 전문 과정을 중급, 고급, 전문화 과정까지 배우고 있다.

과학수사 전문 과정은 CCTV 분석, 범죄 분석, 법최면, 몽타주, 유전자 분석, 지문검색시스템(AFI S), 족 윤적 감정, 검시, 화재조사, 거짓말탐지기, 현장 감식 등이 있는데 현장 감식 과정은 필수 과정이다. 다른 전문 과정은 개개인이 맡는 분야에 따라 1개 이상 전공해야 한다. 교육 기간은 지문감식처럼 2주가 소요되는 과정이 있는가 하면 유전자 분석, 화재 조사처럼 1년 까지도 걸리는 교육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7개의 팀을 가진 경기청에 비해 일선서들의 여건이 턱 없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일선서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지문 감정, 족 윤적 감정, 화재조사밖에 없음은 이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몽타주, 법 최면을 해야할 시에는 경기청에 지원 요청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유해성분 노출 빈도가 높아지고 있지 않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수원남부 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일선서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건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41개 경찰서마다 과학수사요원과 장비를 보강한다 치면 1명씩만 늘려도 41명을 늘이는 셈인데, 그 정도로는 지방청 고유의 역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차라리 그보단 지방청에 전문 팀을 몇 개 더 늘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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