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죽음 둘러싼 의학적 논리 싸움 충격적 사건의 진실

출산을 앞둔 만삭의 의사부인이 숨진 사건을 놓고 경찰과 용의자 간에 신경전이 치열하다. 용의자는 다름 아닌 피해자의 남편 A(32)씨로 그는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다.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오후 5시께 A씨는 마포구 자신의 집 욕조에서 임신 9개월인 아내 박모(29)씨가 숨진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박씨의 사인을 조사하던 중 석연치 않은 부분을 발견해 A씨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A씨가 유력한 용의자임을 나타내는 여러 증거들이 드러났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A씨의 범행 가능성에 대해 법원이 좀 더 신중한 조사를 요구한 것이다.

A씨의 주장은 ‘아내가 욕실 바닥 등에 미끄러지는 사고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A씨는 초기 경찰 조사에서 “아내는 타살 당할만한 일이 없다. 부부사이도 원만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A씨의 진술에 의구심을 품었다. 사망한 박씨의 신체 곳곳에서 여러 개의 상처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상처들은 A씨와 연관 있어 보였다.

경찰은 박씨를 부검해 사인이 ‘목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박씨의 손톱 아래 묻은 혈흔에서 A씨의 DNA가 검출됐다. 이에 경찰은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에 대해 지난 4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건은 미궁 속으로

경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시신을 발견한 날 A씨가 한동안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의 몸 곳곳에 박씨의 손톱에 긁힌 것으로 의심되는 자국이 발견된 점 등에 비춰볼 때 혐의를 입증할 근거가 충분하다며 영장발부를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의외의 결정을 내렸다. 변호사를 선임한 A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만삭의 임신부가 쓰러지면서 자연스레 목이 눌릴 수 있는데다 제삼자에 의한 타살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씨 측은 당시 전문의 자격시험에 대비한 공부를 하느라 휴대전화를 쓰기 어려웠고, 자신의 몸에 긁힌 자국은 자신이 아토피를 긁은 것이라며 결백을 호소하고 있다.

법의학 등 살인사건 전문가들도 박씨 사인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 범죄 전문가들은 “살인의 연계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범행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반해 또 다른 쪽에는 “A씨의 결백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피해자 손톱에서 나온 A씨의 DNA는 명백한 증거”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경찰은 박씨가 사망하기 전 A씨와 박씨 사이에 부부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의 손톱에서 A씨의 DNA가 발견된 점, A씨의 체육복에서 박씨의 혈흔이 채취된 점 그리고 박씨의 얼굴과 몸에서 멍이 발견된 점 등이 그 근거다.

문제는 A씨의 범행동기다. 범죄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범죄는 반드시 범행동기가 있다”고 말한다. 묻지마 범죄에도 나름의 동기는 존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경찰은 A씨의 범행동기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의학적 논리에 경찰 당혹

경찰은 범행 동기에 대해 부부싸움에 의한 우발적 살인으로 보고 있다. 만삭의 아내를 계획적으로 살인했다고 보기에는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의 이같은 논리는 부부싸움이 있었다는 전제하에 성립된다. 만약 부부싸움이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동기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A씨가 집요하게 “부부싸움은 없었다”며 아내 박씨가 사고로 숨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사건 수사에서 범행동기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동기가 정확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증거들이 설득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A라는 사람이 돈을 빼앗기 위해 친구 B를 죽였다고 동기를 가정할 때 B의 돈이 사라지고 그 돈이 A의 집에서 나왔다면 모든 게 명백해 진다. 그러나 정작 B의 돈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경찰은 정확한 동기를 규명해야 한다. 그래야 증거가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A씨는 자신의 팔과 얼굴에 난 상처에 대해서도 경찰에 반박하고 있다. 그는 상처가 피부염(아토피)을 앓아 스스로 긁은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씨의 손톱에 자신의 DNA가 발견된 것에 대해서는 “아내가 자신의 등을 긁어줬기 때문”이라고 A씨는 경찰에 진술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의사인 A씨가 손톱으로 아토피를 긁을 리 없다는 생각이다. 손톱으로 긁을 경우 아토피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에선 “의사라도 아토피의 경우 가려우면 긁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씨의 직접 사인에 대해서도 경찰과 A씨의 주장은 대립한다. 경찰은 A씨가 박씨의 목을 조른 것으로 보고 있지만 A씨는 ‘욕실에서 고개가 꺾이는 순간 기도가 막힌 것’이라는 주장이다. 경찰은 억지라며 “보강수사를 통해 밝혀내겠다”며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푸는 것도 쉽지 않다. 박씨가 교살당한 것이라면 목에 목 졸림 흔적이 있어야 하지만 그게 없기 때문이다.


A씨 “나는 억울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손으로 목을 졸랐다면 흔적이 남게 되고, 교살의 흔적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욕조로 넘어져 벽에 부딪히면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질식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여기에도 의문은 남는다.

의식을 잃을 정도로 머리를 부딪쳤다면 그 상처가 남아야겠지만 박씨 머리의 상처는 뒤통수 정수리에 1.5㎝가량의 찢어진 상처와 다른 작은 상처가 전부다. 이에 대해 일부 의학전문가들은 “예민한 산모는 물리적 충격이 아니더라도 정신적 쇼크 등과 같은 충격에도 정신을 잃을 수 있다”고 말해 경찰의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이 사건의 미스터리는 부부싸움이 없었다는데 그 흔적이 있고, 질식사 했지만 그 흔적이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A씨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없이 경찰로부터 범인으로 몰려 너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A씨는 “아직 경찰수사가 끝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며 “만삭의 아내가 변을 당해 괴로움이 큰데 범인으로 몰려 당혹스럽다.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사고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사망 추정 시간대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것인 만큼 이를 보강해 다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