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고위 인사 “청와대 관계자 김 사장 연임 언급 전화 직접 받았다”

MBC 김재철(58)사장이 차기 사장으로 선임, 연임에 성공했다. MBC는 지난 17일 오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김 사장의 선임을 확정했다. 사장 선임을 위한 주총에는 지분 70%를 보유한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와 지분 30%를 보유한 정수장학회가 참석했다. 대주주인 방문진은 전날 이사회를 열고 사장 후보 2명에 대한 면접을 실시, 김 사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김 사장은 이사회 투표에서 사장 선임 요건인 재적 이사(9명)의 과반수인 5표를 얻었다. 김 사장의 연임에 반대하는 노조 측과 김 사장은 결정 직전까지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왔으나 주총의 결정으로 김재철-MBC 노조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일단 김 사장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노조 측은 연임반대 투쟁을 이대로 끝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3월 중순까지 김 사장의 행보를 지켜본 뒤 중대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김 사장의 연임이 확정되자 노조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는 즉각 파업을 예고했다.

MBC 노조 측은 문화방송노조특보를 통해 “노조 측은 ‘R등급 강제할당’, ‘김 사장의 일방적인 조직개편’, ‘지역MBC 강제 통폐합’ 등 김 사장이 기존의 경영노선을 유지한다면 전면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조의 파업이 예고됨에 따라 주요 인기 프로그램에 대한 결방사태가 또 발생할 수도 있다. 지난 파업 때 MBC는 ‘무한도전’을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사태를 빚었다.


MBC 김재철 호 어디로 가나

노조 측은 또 사장 선임 작업이 투명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고 있다.

[일요서울]은 지난 호(제 875호 참고)를 통해 이번 사장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MBC 관계자의 주장을 보도한 적 있다.

익명을 요구한 MBC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가 김 사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MBC 고위 인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김 사장의 연임을 암시했다. 이 측근은 사석에서 가까운 MBC 직원들을 만나 “청와대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 김 사장이 연임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MBC 내부에 퍼지면서 ‘청와대-방문진 MBC 사장 공모조작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만약 이 고위인사가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아 김 사장의 연임에 대한 통보를 전달 받은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공정방송을 지향하는 MBC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될 것으로 보인다.

공모당시 MBC 내부에서는 “김 사장이 방문진 위원들과 정치인들을 상대로 연임로비를 벌이고 다닌다” “김 사장이 연임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지만 현 정부는 김 사장을 외면하고 있다” “방문진이 이미 김 사장을 교체하기로 결정했고 청와대에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등등 소문이 적지 않게 나돌았다.

MBC 사장 선임결정을 불과 이틀 앞둔 때까지만 해도 ‘청와대-방문진 MBC 사장 공모조작설’은 김 사장 퇴출을 암시하는 소문들에 묻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사장 결정 전날인 지난 15일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청와대가 김 사장의 연임을 원한다는 뜻을 방문진에 전달, 방문진이 이를 수용한 것 같다는 소리가 MBC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치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방문진은 김 사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MB정부 방송장악 막겠다!”

공모 당시 노조는 사장공모에 대해 “각본을 미리 정해놓고 움직이는 ‘쇼’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투쟁속보를 통해 “작년 김 사장 선임 당시 이미 확인됐듯, 방문진이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한 상황에서 이번 차기 사장 선임 과정도 청와대의 의중을 집행하기 위한 ‘사장 공모 쇼’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MBC의 한 관계자는 “방문진이 공정한 심사와 숙고 끝에 김 사장으로 결정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 사장에 합격점을 준 근거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며 “MBC내부 직원들(노조)에게 김 사장 연임 의견을 묻는 자체적인 투표를 실시한 결과 90%가 연임반대를 찍었다. 방문진은 이런 MBC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이어 “무능한 것으로 드러난 김 사장에 방문진이 연임을 허락해 준 것은 청와대의 입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김 사장의 연임이 확정되면서 MBC 내부에서는 조만간 간부급 직원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인사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14년까지 임기가 늘어난 김 사장이 반대파를 숙청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에 노조는 김 사장이 반대파에 대해 인사 조치를 할 경우 초강수로 맞서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아울러 이번 사장 선임에 대한 청와대 개입이 확실시 되는 이상 정부의 언론탄압 음모에도 정면으로 맞서겠다고 노조는 천명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노조가 위압적인 단체행동을 통해 MBC 개혁 임무를 짊어진 김 사장과 빅딜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즉, 노조와 김 사장이 각각 자리보존과 업무 정상화를 조건으로 타협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추측이 나오는 이유는 노조 측이 김 사장 연임에 대해 투쟁의지를 불태우고는 있지만 그 모양새가 구체적이지 않아서다.

노조는 김 사장 연임에 대해 투쟁을 하겠다면서도 무엇을 위해 투쟁을 하겠다는 것인지 확실한 목표를 밝히지 않고 있다. 예컨대 김 사장 연임 취소 등 방문진 결정에 대한 백지화를 주장할 수도 있지만 침묵하고 있다. 이는 향후 김 사장 행보에 따라 방문진 결정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일종의 암시로 풀이된다.

이에 MBC 내부에서는 노조의 모호한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MBC의 한 관계자는 “자질 부족을 이유로 김 사장의 연임을 반대한 것이 노조다”라며 “그렇다면 김 사장의 연임 결정 자체가 결사투쟁의 이유가 돼야 하는데 노조는 그게 아니다. 김 사장을 경계하기 위해 투쟁을 외치고 있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차기 노조위원장의 “하는 것 봐가며 결정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에서도 묻어난다.

정영하 차기 노조위원장은 “2~3월 말 드러날 것으로 보이는 조직개편과 광역화 밑그림, 본사 임원과 지역사장단 인사, 등급평가 후속조치 등을 보고 투쟁의 총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향후 거세질 MBC 내부 반발을 김 사장이 어떻게 잠재울지 그리고 김 사장과 노조가 어떻게 ‘화합’해 나갈지 국민적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김 사장의 연임 결정이 있던 지난 16일 공교롭게도 중앙노동위원회는 특별조정위원회에서 임시단체협약 일방파기와 관련해 MBC노조 측이 신청한 쟁의 조정을 중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노조 측은 지난 21일 MBC노동조합 제 9기 집행부 출범식을 갖고, 지역 MBC 조합원 일방적 통폐합 반대 상경에 대한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노조는 찬반투표를 거치면 합법적으로 파업 등 쟁의 행위를 벌일 수 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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