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행세를 하면서 영국 왕실 경호실장과 국정원 직원을 사칭해 투자금 명목으로 거액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지난 15일 이 같은 일을 벌인 류모(71)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하고 이모(56·여)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류씨 등은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방한 당시 밀반입한 5조 원 상당의 금괴와 외화를 발굴해 청와대 허가로 광양제철소를 인수할 계획이다. 관계기관 로비자금 및 발굴비용을 투자하면 이득금을 분배해주겠다”고 속여 김모(59)씨 등 3명에게 1억5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류씨 등은 자신의 신분을 사칭하는 것은 물론 청와대 직인까지 정교하게 위조된 ‘제철소 인수 허가증’을 제시하며 피해자들을 현혹시켰다. 또 경기도 이천시의 도자기 가마 및 과수원 등에 피해자들을 데리고 가 영국왕실 금괴를 숨겨 놓은 곳이라며 보여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관계자는 “류씨 등은 현장답사 명목으로 피해자들을 데리고 갔음에도 내부로는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고, 대신 이 곳에 은닉된 금괴라며 금괴 사진을 보여줬다. 피해자들은 정교하게 위조된 서류와 금괴 사진만으로도 은닉 자금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믿었다”고 밝혔다.

이들 일당은 교회 목사인 김씨에게 ‘교회 신축’을 약속하는 등 뿌리치기 힘든 이권혜택을 제안해 피해자들의 기대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이 피해자들에게 약속한 이권혜택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류씨와 이씨는 부부행세를 하며 사기행각을 벌여왔지만 실제로는 이미 7년 전 류씨에게 동일수법으로 15억 원을 사기당한 이씨가 피해금을 회수하기 위해 범행에 가담한 것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류씨 등의 은행계좌에 출처가 불분명한 10억 원의 돈이 입출금된 사실을 확인, 추가 피해자를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류씨는 사기전과범으로 무직이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것은 물론 외국으로 입출국한 기록이 전혀 없다”며 “황당한 사기행각에도 여전히 류씨의 말을 신뢰해 ‘피해 진술 때문에 일 진행이 지체돼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 진술을 한 피해자들을 협박하는 피해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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