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한 아내 시신 12년간 보관한 인면수심 남편


살해한 아내의 시신을 밀봉해 자신의 집 안방에 12년이나 보관해 온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15일 이모(51)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검거했다. 이씨는 1999년 6월 서울 성동구 화양동 자신의 다세대주택에서 아내 윤모(당시 39세)를 살해한 후 시신을 비닐로 밀봉해 상자에 넣어 방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의 시신은 딸 이모(20)씨가 이사를 위해 이삿짐을 옮기던 도중 발견됐다. 비정한 남편이 저지른 비극의 전모를 파헤쳐봤다.

1999년 6월 19일 오후 11시께 서울 성동구 화양동에 위치한 자택에서 이씨 부부는 이사 문제로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 이씨 부부는 다음날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다세대 주택 1층 단칸방으로 이사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로 인한 잦은 이사에 스트레스를 받았던데다 화양동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윤씨는 ‘이사 가고 싶지 않다’며 이사를 강경하게 반대했다. 경제적 문제와 성격차이 등으로 지속적인 불화가 있었던 이씨 부부의 언성은 높아졌고 곧 몸싸움으로 번졌다.


이사문제로 부부싸움하다 살해

감정이 격해진 이씨는 주방으로 가 흉기를 집어 들었다.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이씨는 아내의 목을 흉기로 한 차례 찔렀고 윤씨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결혼 10년 만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윤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경부자창에 의한 동맥파열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윤씨의 목 안쪽에서 경동맥이 파열돼 외부 출혈은 심하지 않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우발적으로 아내를 살해한 이씨는 당황했다. 이씨는 김장용 비닐로 아내의 시신을 겹겹이 감아 밀봉해 1m 높이의 상자에 넣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씨는 날이 밝자 아내의 시신이 든 상자를 이삿짐으로 위장해 후암동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이후, 아내의 시신이 든 상자는 3평 남짓한 단칸방 내의 텔레비전 옆에 12년간 보관됐다. 이씨는 이 상자를 다시 김장용 비닐로 10겹 이상 감아 밀봉하고, 은박지 소재의 보온용 포장으로 겹겹이 감쌌다. 아내의 시신이 부패돼 악취가 날 것을 우려한 이씨는 실리콘으로 밀봉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8살이었던 딸 이씨는 “아버지가 상자를 재포장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씨는 딸에게 “중요한 물건이 들었으니 뜯어보지 말고 잘 보관하라”고 신신당부했고, 딸 역시 12년간 상자를 열어보지 않아 상자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또 워낙 치밀하게 밀봉된 탓에 악취도 전혀 나지 않았던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1999년 후암동으로 이사 온 후 3년간 딸과 함께 살았던 이씨는 집을 나가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집을 찾아 20만 원 남짓한 월세비를 지불했다. 이씨는 딸에게 경제적인 도움은 거의 주지 못했고, 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려왔다.


이사짐 옮기다 어머니 시신 발견

이씨는 집을 나온 후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지인이 운영하는 건강음료 회사에서 사무직 업무를 맡았고, 80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숙식을 해결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조사에서 이씨는 “딸이 성장해 좁은 단칸방에서 딸과 둘이서 생활하기가 어려워 집을 나왔다”고 가출 이유를 밝혔다.

어렵게 생계를 이어오던 딸 이씨는 월세를 내지 못해 부득이하게 이사를 가게 됐다. 이사 당일인 지난 12일 남자친구와 이삿짐을 나르다 텔레비전 옆의 밀봉된 상자도 나르게 됐다. 딸 이씨는 혼자 상자를 옮기려 했지만 너무 무거워 들 수가 없었다. 결국 남자친구를 불러 둘이서 함께 들었지만 상자가 지나치게 무거운 것에 의문을 품게 됐다.

이에 딸 이씨와 남자친구는 상자를 열어보게 됐다. 상자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비닐을 뜯을수록 악취가 심하게 나자 딸 이씨는 집주인에게 가서 도움을 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상자를 본 집주인이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박스를 여니 악취가 너무 심하다”며 두 차례 전화를 걸었고, 범행이 발각된 것을 알게 된 이씨는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지인의 집에 은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상자 안에 있던 반(半) 미라 상태의 시신을 발견하고 유전자감식을 벌인 결과 딸 이씨의 어머니 윤씨로 확인됐다. 이후 경찰은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은신해 있던 이씨를 검거했다.


가출신고, 실종신고 한 차례도 없었다

이씨는 검거 직후 혐의를 인정하며 “아내와 딸에게 미안하고 반성한다”며 “아내의 시신을 영원히 보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살해동기에 대해서 이씨는 “이사 문제로 다퉜고 마음이 맞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씨의 혐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의문점이 남는다. 윤씨가 12년간 행방불명 됐음에도 불구하고 가출신고나 실종신고가 단 한 차례도 접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1999년 화양동에서 후암동에서 이사했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윤씨의 가족이 있었으나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씨와 딸은 윤씨의 부재에 대해 말해주지도 묻지도 않고 지냈다”고 전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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