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딸 알고 보니 유흥업소 마담

부산 사상경찰서는 지난 2월 22일 재벌 딸 행세를 하며 결혼하겠다고 속이고 남성들로부터 수억 원의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권모(29·여)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권씨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외국 명문 의과대 학생과 재벌 2세인 것처럼 행세하며 진모(35)씨와 최모(35)씨에게 접근, 200여 차례에 걸쳐 2억5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권씨는 중졸학력에 강남 유흥업소 마담인 것으로 밝혀졌다. 천연덕스럽게 남성들을 속인 권씨의 사기행각 속으로 들어가 봤다.

권씨는 온라인 채팅을 하다 카오디오 판매원인 진씨를 알게 됐다. 진씨에게 자신을 재벌 딸이라고 소개한 권씨는 데이트 때마다 명품 옷차림에 고가의 사치품으로 치장한 채 나타났다. 또 진씨를 감쪽같이 속이기 위해 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며 사설경호원까지 뒀다.

권씨는 평범한 외모였지만 세련된 말솜씨로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늘어놓으며 자신을 포장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미국의 하버드대와 뉴욕 의과대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고 속였다. 또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며 학업만 마치면 결혼하겠다고 진씨의 환심을 샀다. ‘자립심을 키우고 싶다’는 권씨의 말에 호감을 느낀 진씨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권씨와 사귀게 됐다.


재벌 2세 행세하며 금품 요구

권씨의 범행수법은 치밀했다. 자신을 재벌 2세로 믿게 하기 위해 항상 서울고급주택가에서 헤어졌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집으로는 단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다. 진씨의 신뢰를 얻기 위해 때때로 진씨의 부모님까지 만나며 ‘학업을 마치는 대로 결혼하겠다’고 안심시켰다. 또 평소 자신이 알고 지내던 강남 부유층 자제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며 철저히 재벌 2세인 양 행세했다.

관계가 깊어지기 시작하자 권씨는 본격적으로 속셈을 드러내고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권씨는 ‘학업 가산점을 받기 위해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에서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며 항공비를 포함한 해외체류비용을 요구했다. 학업을 마치면 받은 돈을 돌려주겠다며 자신의 검은 속내를 감쪽같이 감췄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권씨는 자신이 위암에 걸려 수술비가 필요하다며 거짓 눈물로 호소했다. 158cm의 작고 왜소한 체구의 권씨가 만날 때마다 ‘아프다’며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자 진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병원비와 수술비를 마련해줬다. 하지만 경찰조사결과 권씨는 위암을 앓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회 초년생이라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던 진씨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50~500만 원씩 건네줬고, 권씨는 총 2억4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아 챙겼다.


대부분 유흥비로 탕진

권씨는 진씨에게 받은 돈으로 명품과 각종 귀금속을 사 모았다. 또 일본과 중국, 미국, 캐나다로 수차례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관계자는 “권씨는 대부분의 돈을 유흥비로 탕진했고 해외출입국 기록을 모두 확인한 결과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보름동안 해외에 머물다 귀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여행목적으로 해외에 다녀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씨는 진씨가 결혼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뤘다. 이에 의심을 품게 된 진씨가 ‘미국 하버드대와 뉴욕 의과대 전문의 과정 수료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두려워진 권씨는 돌연 잠적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권씨의 사기행각은 계속됐다. 2008년 6월 친구의 소개로 회사원이던 최씨를 만나 같은 수법으로 6개월 간 47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뜯어내고 종적을 감췄다.


중졸 학력에 룸살롱 마담

결국 재벌 딸과의 결혼을 꿈꾸었던 남성들은 사기를 당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에 최씨는 2009년 6월, 진씨는 지난해 1월 경찰서에 혼인빙자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권씨가 대질 심문을 앞두고 잠적해 1년 넘게 수사가 지연됐다. 경찰의 눈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던 권씨는 지난달 17일 서울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발목을 잡혔다.

경찰 조사결과 진씨와 최씨를 감쪽같이 속였던 권씨의 실제 학력은 중졸이었다. 권씨는 부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서울 유흥업계에 뛰어들었고 보도방 도우미 등 유흥업소를 전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관계자는 “권씨는 부산 출신이었지만 사투리 억양을 고치고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해 피해자들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며 “최근 권씨가 서울 강남 역삼동에 위치한 룸살롱에서 마담으로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경찰조사에서 권씨는 “돈이 없으면 사람들이 무시하고 가난이 한이 돼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며 혐의를 시인했다. 경찰은 권씨가 저지른 사기행각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여죄를 캐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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