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방과 티켓다방 결합


서울 신촌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모텔형 DVD방’이 등장한 지 이미 오래다. 이들 DVD 방은 대부분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기준을 어기고 있지만, 단속은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 현실이 이렇다 보니 ‘역사는 DVD방에서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몸소 실천하려는 커플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고 솔로들 역시 성매매의 장소로 DVD방을 찾고 있다. 바야흐로 ‘모텔형 DVD방’의 황금기가 도래한 것이다.

실제로 신촌 일대 DVD방 5개 업체를 무작위로 선정, 취재한 결과 1개 업체를 제외한 4곳은 침대형 소파와 물티슈, 화장지까지 구비해 둔 ‘모텔형 DVD방’이었다. 영업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성인층에 초점을 맞춰 러브호텔 형식의 영업을 벌이고 있는 것. 대학가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모텔형 DVD방’에 대해 알아봤다.


연인 DVD방 등장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Y DVD방. Y DVD방 입구에는 할인 카드 광고문구와 최첨단 시설물들에 대한 자랑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Y DVD방 내부는 음침할 만큼 어두웠고, 미로처럼 꾸불꾸불한 통로는 어른 두 명이 마주보고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좁았다. 감상실로 통하는 복도를 따라 아르바이트생에게 안내 받은 9번방으로 들어갔다.

감상실 벽면에 뚫린 네모난 유리창은 검은색 천으로 가려져 있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감상실 안에는 성인 남성 3명이 누워도 될 만큼 널찍한 소파와 화장지, 재떨이 등이 구비돼 있었다. 감상실 안에는 침대처럼 뒤로 젖혀지는 2인용 소파가 구비돼 있었고, 벽면엔 1m는 돼 보이는 거울이 달려져 있었다.

신촌 ○○치킨 맞은편의 N DVD방. 건물 옥상에서부터 2층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플랜카드의 문구에는 이곳이 연인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DVD방임을 알리고 있었다. 낮은 조도로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다른 업소와는 달리 N DVD방은 화려한 인테리어 장식과 조명으로 신세대 커플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30대 후반의 N DVD방 업주 전모(38)씨는 “연인들만 받기 때문에 인테리어를 아늑하게 맞췄다”면서 “업계에서 ‘연인 비디오방’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곳이 바로 N DVD방”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연인 DVD방’을 창안하게 되었다는 그는 “다 큰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외국의 경우 사랑을 표현하는데 자유롭지만 유교사상이 짙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길거리에서 뽀뽀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욕을 먹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씨는 또 “막말로 C, D업소 뿐만이 아니라 건대, 신촌 등 대학가 주변의 DVD방들은 거의 탈법화한 업소”라며 “24시간 영업하는 것은 기본이고 청소년을 받는 업소도 있다. 심지어는 담요까지 제공하는 곳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소년들이 유해업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성인 남·녀가 사랑하는데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긴 영화가 대여 1순위

여느 DVD방과 마찬가지로 신촌 일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최근 출시작이다. 다만 액션 영화보다는 멜로 영화가 더 인기가 높고, 예술 영화로 분류되는 영화들도 잦은 선택을 받는다.

신촌에서 DVD방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는 “대학생 연인들이 올 경우 선택권을 여학생이 갖는 경우가 많아 여성 취향의 영화가 인기”라면서도 “몇몇 이 부근에서만 인기가 높은 영화들이 있는데 이런 영화를 빌리는 손님의 경우 그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가장 구석진 방으로 안내하곤 한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부근에서만 인기 있는 영화’란 상영시간이 긴 영화를 의미한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러브 오브 시베리아’. 90년대 대학가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끌었던 긴 러닝 타임의 영화인 ‘파 앤드 어웨이’는 이제 DVD방에서 종적을 감췄고 그 바통을 ‘러브 오브 시베리아’가 이어 받았다.

유명 포털사이트 지식 검색에서도 이와 유사한 질문을 찾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여자 친구에게 자연스럽게 DVD방에 가자고 할 수 있는지 또는 어떤 영화가 가장 러닝 타임이 긴지 여부를 묻는 질문들이 눈에 띄는데 기상천외한 답변들도 눈에 띄곤 한다.

이러한 DVD방의 변화는 젊은 층의 성의식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부정적이고 숨겨야 할 것으로 인식됐던 성 개념이 개방되면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간섭이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DVD방으로 자연스럽게 바뀐 것. 특히 사귄 지 얼마 안 된 연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키스와 약한 애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출입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을 덜 의식해도 된다는 점도 커다란 장점으로 꼽힌다.


성매매 공간으로 변질

하지만 최근 DVD방은 연인들의 은밀한 데이트 장소가 아닌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변질돼가고 있다.

경기도 안산의 한 DVD방. 입구에서부터 철 지난 삼류 영화 포스터가 인적 드문 DVD방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는 이 허름한 DVD방이 저녁 무렵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지하에 위치한 실내는 여느 DVD방과 다를 바 없다. 특징이라면 혼자 오는 남자손님이 주를 이룬다는 것. 그 후 10분 정도면 일행으로 보이는 여성이 도착한다. 이들은 모두 근처 다방의 종업원이다.

우선 카운터에 “커피 한 잔 시켜주세요"라는 말을 건네면 DVD방 업주가 인근 다방으로 전화를 해 ‘티켓손님’이 있다는 말을 전한다. 티켓을 끊은 손님은 DVD방으로 아가씨를 불러들여 이곳에서 성매매를 한다.

원곡동의 한 티켓다방에서 일한 지 두 달 됐다는 박모(23·여)씨는 “가벼운 신체접촉은 물론 BJ(오럴섹스의 한 종류)를 해주는 레지들이 많다. 돈만 더 준다면 비디오방에서 2차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요새는 10만 원 내외의 돈을 받고 비디오방에서 즐기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또 박씨는 “비디오 방에서 관계를 맺으면 마담에게 T/C를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것보다 낫다”고 전했다.


단속 없는 성의 사각지대

단속에 대한 위험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성매매 특별법 이후 안전한 곳에서 성행위를 하고자 하는 많은 남성들이 생겨났고, 그 요구를 수용한 새로운 시스템이 DVD방과 티켓다방의 결합이라는 설명이다. 이용료는 다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보통 커피값 6000원에 티켓을 끊으면 8000원에서 1만 원까지 가격이 뛴다. 여기서 티켓비는 시간당 3만 원에 DVD방 입실료 5000원이 추가된다.

안산시내 시화공단에 걸쳐 몇 군데의 업소가 이와 같은 티켓다방과 DVD방이 결합한 영업형태를 보인다. 10여 군데가 넘는 ‘퇴폐 DVD방’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고 안산시내와 10분 거리인 시화공단의 번화가에도 시내같은 시스템의 DVD방이 운영되고 있긴 마찬가지. 이 지역은 3년 전 DVD방 등을 상대로 영업하는 티켓다방의 실태가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어 세간의 화제가 된 곳이다. 하지만 확인 결과, 아직까지 많은 DVD방이 티켓걸과 손님들의 윤락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DVD방을 자주 찾는 다는 김모(34)씨는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는 DVD방이라 불리지 않고 떡방(성행위를 하는 장소)이라고 불린다”며 “단속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성행위를 할 수 있어 밤에 가끔 온다”고 말했다.

물론 인근의 모든 업소가 아닌 일부 업소의 이야기지만 업주들의 변칙 영업에 경찰의 단속은 전무하다. 단속이 있다 해도 DVD방 업주는 아가씨와 손님이 일행이라 주장하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야말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진 DVD방. 성매매특별법으로 인해 점점 음습해지고 기발해지는 성매매 업소들의 발 빠른 변화에 DVD방도 편승하고 있는 셈이다.

[마이너뉴스 배성철 기자] snim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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