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남편의 진실게임

지난 1월 14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오피스텔에서 발생한 ‘만삭 의사부인 사망’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남편 백모(31·종합병원 레지던트)씨가 지난달 24일 구속됐다. 한차례 영장을 기각했던 법원이 “백씨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도주와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 영장 기각 이후 20일 가까이 벌인 경찰 보강 수사 결과가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백씨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데다 백씨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물증이 없어 경찰과 백씨간의 치열한 진실공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정확한 범행동기와 경위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의 내막을 알아봤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 1일 백씨의 마포구 도화동 오피스텔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혐의를 강하게 부인해왔던 백씨는 이날도 자신에게 드리워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등의 답변으로 일관하는 백씨의 태도는 시종일관 담담하고 차분했다.

이날 현장검증은 백씨가 지난달 13일 저녁 아내 박모(29·여)씨와 외식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던 순간부터 이튿날 오전 6시 41분 도서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순간까지와 같은 날 오후 5시 욕실에서 아내의 시신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이 3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백씨가 혐의를 전면 부인함에 따라 아내가 목 졸려 숨진 순간부터 욕실 욕조에 시신을 옮기기 전까지의 상황은 재연하지 않았다.


타살 뒷받침 증거 확보

이날 현장검증에는 범죄 심리 분석관인 프로파일러도 투입돼 현장 검증 과정을 지켜보며 백씨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백씨가 범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은 백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에는 도서관 폐쇄회로(CC)TV에 찍힌 백씨의 목도리와 국과수 2차 소견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경찰은 아내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새벽 이후 걸려온 휴대전화와 문자메시지 45통에 백씨가 일절 응답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왔다. 이에 대해 백씨는 “진동상태로 가방 속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목도리에 감겨있어 진동소리를 듣기 어려웠다”고 반박했다. 영장 기각 이후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사건 당일 검은색 목도리를 두른 백씨를 찾아내 백씨의 진술이 거짓임을 밝혀냈다.

또한 현장감식 및 부검을 담당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손에 의한 목 눌림으로 인한 질식사’라는 소견과 함께 박씨의 눈 주변 상처에서 중력 반대 방향인 귀 뒷부분으로 피가 흐른 자국이 발견됐다는 내용을 확보해 타살 근거로 제시했다. 더불어 몸에 상처가 발생하면 혈액이 사방으로 흩뿌려진 흔적인 비산흔이 시신이 발견된 욕조 벽면에 없다는 사실도 타살 가능성을 뒷받침해줬다.


범행 동기 파악에 주력

백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경찰은 범행동기로 백씨의 전문의 1차 시험 불합격 가능성과 게임중독, 주거지 이전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경찰은 구속기간 동안 백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겠다고 전했다.

사건 전날인 지난 1월 13일 1차 전문의 시험을 잘 보지 못한 백씨는 새벽 3시까지 ‘세틀러’라는 게임을 했다. 백씨가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 3월부터 지방에서 공중보건의로 군에 입대해야 했고 박씨는 친정집에서 머무를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전문의 시험을 망친 백씨가 자정이 넘도록 게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다 이사 문제로 갈등까지 불거지면서 백씨가 우발적으로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백씨는 자신과 아내는 잉꼬부부로 소문날 만큼 사이가 돈독했다며 주장했다.

경찰 발표 이후, 경찰의 주장대로 백씨가 아내를 살해했다면 ‘게임중독으로 인한 살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이견이 따른다. 일반적으로 게임중독으로 촉발된 살인은 폭력적인 게임에 중독됐을 경우에 발생하기 때문. 백씨가 중독된 게임은 12세 이용가 등급을 받은 폭력성과 거리가 먼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경찰의 추정대로 백씨가 범인이라면 지능범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경찰은 “11년에 걸쳐 의학을 공부해 법의학적 지식을 갖춘 피의자”라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백씨가 아내를 살해한 뒤 시신을 욕조로 옮겼다고 추정하고 있다. 또 법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욕조 위로 옮긴 시신의 목의 굽힌 각도까지 조절했으며 아내가 숨진 지 11~ 14시간 뒤에 신고해 사망시간 추정을 어렵게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하지만 백씨 변호인 측은 “박씨의 사인은 자연사나 돌연사다”며 “만삭의 임산부가 쓰러지면 자연스럽게 목이 눌릴 수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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