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로비 의혹 실체 없는 사건으로 가닥 잡힐 듯

‘그림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BBK 의혹’을 폭로한 에리카 김에 대한 검찰 조사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두 사람의 기획입국설로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지난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기획입국설은 사실무근”이라며 일부에서 제기된 의혹을 일축했다.

이날 정장선 민주당 의원은 “한 전 청장과 에리카 김씨가 함께 수사를 받는 것은 신기한 일”이라며 “사전 조율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이 장관은 “한 전 청장의 입국은 아무런 통보 없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일이고, 에리카 김씨도 미국에서 보호관찰이 해제되면서 사전에 들어오겠다고 연락하고 들어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세간의 의혹 섞인 시선은 가시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 수사에 대한 회의론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한 전 정창에 대한 검찰조사와 관련해 “여권인사가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은 피하고 한 전 청장 개인비리 수사만 진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의 입국과 검찰 수사 결과는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한 전 청장 수사의 핵심은 ‘도곡동 땅이 이명박 대통령의 소유’라는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의 증언과 한 전 청장이 현 정부 실세를 상대로 연임로비를 벌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조사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어 회의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찰은 “도곡동 의혹은 필요하다면 조사할 계획”, “정치인 연루 의혹 조사는 아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림로비 의혹에 집중할 예정” 등의 발언으로 핵심에서 살짝 비켜서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와 관련, 이 장관은 “국민이 의혹을 갖고 있어 그 부분(도곡동 땅, 연임로비 등)도 수사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하지만 전현희 민주당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이번 수사는 정권 차원에서 사전 기획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며 검찰 수사가 용두사미형으로 끝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어 전 의원은 “검찰 수사가 면죄부를 주기 위한 쪽으로 진행되면 국민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부실수사가 이어지면 특별검사와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 장관은 “그런 게 들어오지 않도록 철저하게 수사하겠다”고 답했다.


큐 싸인 떨어지자 또…

이 장관의 이 같은 약속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용두사미형 수사가 될 것이라는 회의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찰 수사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으며 모든 것이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수사는 장기화 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은 유야무야 되는 전형적인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검찰 주변과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그 시나리오는 이렇다. 1차적으로 한 전 청장에 대해 검찰이 조사를 벌이고 이 과정에서 한 전 청장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이 입원한 상태에서 주요 참고인 조사를 통해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사실들을 들춰내 발표한다. 하지만 중요한 핵심 사실들을 밝히는데 있어 검찰은 신중한 입장을 계속 유지한다. 중요 참고인 조사가 마무리 되면 한 전 청장은 퇴원해 다시 검찰 조사를 받고, 두 달 정도 지난 후에 검찰은 다시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이를 통해 검찰은 “한 전 청장의 개인 비리 일부를 밝혀내는데 성공했고, 정치인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드러난 사실이 없다”며 사건을 종결한다. 한 전 청장은 개인 비리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 실형을 선고 받지만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형 집행정지가 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었던 여러 이슈들이 마무리된 과정과 동일하다. 그리고 최근 마치 이를 뒷받침 하듯이 한 전 청장이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지난 4일 확인됐다.


기로에 선 검찰의 선택

앞서 검찰은 전날 오전 경기 고양시에 있는 한 전 청장의 자택과 그림로비의 핵심 증거물인 고(故) 최욱경 화백의 ‘학동마을’ 그림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서미갤러리를 압수수색했다.

한 전 청장은 현재 VIP 병동에서 안정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한 전 청장이 검찰의 수사 압박을 일단 피하고 대응 논리를 개발할 시간을 벌기 위해 입원이라는 수를 뒀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을 소환해 ▲2007년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에게 인사 청탁을 하면서 그림 ‘학동마을’을 상납했는지 ▲2008년 12월 경북 포항에서 정권 유력 인사들에게 골프 접대 등 ‘연임 로비’를 했는지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에게 “정권 실세에게 줄 10억 원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3억 원을 요구한 게 사실인지 등을 조사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일부 의혹의 경우 검찰 수사의 결론은 이미 내려진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연임로비 의혹은 한 전 청장이 로비를 했다고 증언해도 로비를 받은 정권 실세들이 부정하면 이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 안 전 국장의 폭로는 수사의 초점이 ‘정권실세에 돈이 갔는지 여부’가 아니라 3억 원을 요구했는지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이 역시 정권실세에 대한 수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에리카 김도 나올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에리카 김의 동생 김경준씨는 현재 수감 중이고 BBK 관련 논란은 이미 마무리된 지 오래다. 일부에서는 한 전 청장과 에리카 김이 동시 입국한 것을 두고 “2012년 대선기간에 현 정권 실세로비 의혹과 BBK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사전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배후세력 존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파문과 더불어 한화수사 등으로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런 분위기 탓에 한 전 청장과 에리카 김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부담을 안기고 있다. 만약 이번 수사에서 변죽만 울린다면 검찰은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국민적 비난과 더불어 ‘검찰 개혁 요구’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수사 초기부터 회의론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어떤 결론에 이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해 “국회 기획재정위, 법제사법위 등에서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할 것”이라고 지난 3일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한 전 청장과 에리카 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우리가 예상한대로 답변이 나오고, 검찰이 (정권에)상당히 흡족한 방향으로 정리하려고 한다”며 “다시 한 번 검찰의 철저하고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