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판 제작자·감독 전과자 수두룩

파렴치한 B씨가 보여준 영화 제작기

영화계 먹이사슬의 맨 아래층이 현장 스태프 몫이라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지난 1월 29일 알려진 ‘최고은 사건’의 파장은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이었다. 시나리오 작가·스태프들은 최씨 사건을 계기로 가슴 속 응어리를 내뱉었다. 이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돈 때문에 한 고생은 아니지만 50만 원을 주기로 했다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꿈꿔왔던 영화의상 일을 1년 만에 포기한 게 후회되지 않는다”며 영화계에 느낀 회의감을 토로했다. 영화계 재원들을 망가뜨리고 있는 불량제작사의 실태를 영화계 스태프로 일하는 김상근(가명)씨를 통해 파헤쳐봤다.

제작사들이 제작비를 구실로 스태프들의 임금을 체불하거나 갈취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9년 영화산업노조 신문고에 접수된 임금체불 금액은 17억2200만 원이다. 지난해의 경우 7월 까지 합산한 결과 6억8000만 원이었다. 영화계 종사자들은 영화계 생리 또는 제작사들이 신경 쓰여 신고하지 못한 건들까지 합하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중 제작사로부터 1000만 원의 임금을 받지 못한 김씨는 A제작사 B씨를 거론하며 자신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받았던 억울함을 전했다. B씨가 스태프들에게 가로챈 돈은 1억 원 이상이었다.


영화에 해만 끼치는 일부 제작사

2005~2006년 2년 간 김씨는 10억 원 미만의 저예산으로 착수된 C영화 스태프로 참여했다. C영화 지원액은 지자체의 자금 또한 상당부분 차지했다.

A제작사는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스태프를 모았다. 김씨 역시 자신의 팀과 함께 프리 프로덕션(촬영 들어가기 전의 모든 준비작업)부터 촬영에 대비한 작업까지 모두 수행했다.

그러나 크랭크인 당시부터 A제작사는 제작비에서 사무실 유지비라는 명목의 경상비, 영화 기획을 위한 기획료를 가져갔다. 이는 일반적인 관행이지만 A제작사가 가로챈 1억4000만 원은 다소 과한 금액이었다. 중소 제작사들은 기본적으로 기획실 인원을 2~4명 두는 반면 A제작사는 최소한의 인원도 확보해두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수백편의 영화를 참여한 김씨에게 A제작사의 행동은 이상한 점이 많았지만 제작 초반임을 감안해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김씨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A제작사 대표 B씨의 실체를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다수 한국 영화처럼 C영화 역시 지방에 머물면서 촬영을 진행했다. 이 경우 스태프들은 일반적으로 모텔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 그런데 A제작사는 사람이 살지 않는 연립주택을 택했다. 조그만 연립 주택에는 4명씩 들어갔다. 자연스레 청소와 빨래 문제가 커졌다. A제작사의 제작비 절감 수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스태프들에게 제공하는 식사는 이보다 심각했다. 김씨는 “노숙인들도 그런 음식은 먹기 힘들었을 것이다”라며 “상상할 수 없는 식단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C영화의 진행 상태와 여건들이 전혀 납득되지 않아 그만둘까 고민도 했다”고 털어놨다. 툭 하면 문제가 터지는 영화일 경우 스태프들이 도중에 떠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대신 도중에 나가버리면 제작사로부터 임금을 받아내는 것은 훨씬 힘들었다.

고된 강행군 속에서 영화는 2달 이상 진행됐고 전체 분량의 80%를 끝마쳤지만 돌연 영화는 중지됐다. 장비를 돌리기 위한 지원비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영화가 다시 재개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느낀 김씨는 임금을 차일피일 미루는 A제작사를 뒤로한 채 결국 촬영장에서 철수했다.

이후 김씨를 비롯한 스태프들의 임금 요구에 B씨는 ‘돈이 없다’고 발뺌 하거나 지급일을 차일피일 미루는 수법으로 임금을 체불했다. 그러다 B씨는 잠적했다.

창고 속에 방치됐던 C영화는 1년 뒤 D투자사의 구제로 나머지 촬영 분을 소화했다. C영화의 저작권은 D투자사로 넘어갔다.

김씨가 B씨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김씨는 B씨를 두고서 “영화계에 이런 사람이 발붙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답답한 일”이라고 말했다.


별 달고 나온 후 날치기 개봉까지

제작비 절감을 향한 B씨의 노력은 대단했다. B씨의 집념은 현지 캐스팅 배우 임금 체불까지 이르렀다. 이후 김씨는 “그 정도 금액마저도 주지 않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면서 “스태프 임금 갈취가 가장 큰 수확임을 알고 있었을 거다”라고 전했다.

결국 현지 배우들의 고소로 경찰서에 잡힌 B씨는 임금을 주기로 약속하고 풀려났지만 그것도 잠시, B씨는 지자체의 고소로 교도소에서 1년 이상을 살 처지에 처했다. 지자체 지원비 수천만 원을 빼돌린 것. 이후 B씨는 영화계에서 종적을 감추는 듯했고 김씨는 몇 년간 영화계에서 B씨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던 B씨가 4년 만에 돌연 C영화를 들고 돌아왔다. B씨의 행각은 C영화의 저작권을 소유한 D투자사는 물론 임금을 받지 못한 스태프들도 모르게 벌어진 일이었다. B씨는 쥐도 새도 모르게 필름을 빼돌려 새로운 투자사와 계약했다. 도태되기는 커녕 언론 매체 인터뷰까지 소화했던 것이다.

현재 D투자사는 고소를 통해서 저작권을 주장하려 하고 있다. 한편 C영화는 이와는 무관하게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인이 아니라면 떠나라

김씨는 “제작자·감독들이 공금횡령, 사기 등으로 형을 살고 나와 다른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번 일은 더 충격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임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겠지만 영화를 만든 이들도 모르게 개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B씨에 대한 소송을 진행할 것이냐는 질문에 김씨는 난색을 표했다. 수 년 전 흩어졌던 스태프들을 모으는 것이 어렵고 현재 일이 바빠 적극적으로 나설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김씨는 개봉 후의 임금소송은 받아내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 영화가 흑자가 났다는 소문이 퍼져도 당사자만 부인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개봉 전에는 개봉을 해야 돈을 줄 수 있으니 참으라면서 막상 하면 쫄딱 망했다고 거짓말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화관련 단체의 도움을 받는 것도 김씨는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이 같은 사례를 확실히 해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단체들의 구성원 또한 영화계 스태프이기 때문에 제작사 단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화계 프리랜서는 몇몇 제작사 눈 밖에만 나면 적지 않는 타격을 입는다.

그런데 김씨는 A제작사 B씨 문제를 스태프 임금 가이드라인 부재, 불공정 계약, 고용 불안 등의 시스템으로만 돌리지 않았다. 그는 단지 B씨와 같은 영화계 암적 존재들이 영화계에서 영구퇴출되는 것을 바랐다. 영화계가 어려우니 고통을 분담하자고 말하면서 단물만 빼먹으려는 일부 제작사·투자 배급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익분기점을 크게 넘어도 스탭 들은 계약금 이상으로 받지 못하는 데 적자가 나면 가장 피해를 크게 보는 것은 스태프라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는 “당시 일했던 동료들은 우리가 임금을 못 받더라도 열심히 찍었는데 개봉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같은 반응이라며 스태프들의 미래가 앞으론 밝아지길 바랐다.

사실 C영화 스태프들이 받았던 피해가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은 아니었다.

지난해 E영화감독과 F프로듀서는 유령회사를 차린 후 배우와 스태프들을 모았다. 애초에 찍을 생각도 없었으면서 투자비를 충분히 거둬들일 때까지 ‘찍는 척’을 했던 것이다. 이 후 두 사람은 잠적했다.

최고은 사건으로 전환 국면을 맞고 있는 영화계. 시스템의 변화와 예술인 복지가 개선되더라도 강자와 약자 간의 상생 없이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이 영화계 스태프들의 주된 관측이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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