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고 싶은데 만류하니…’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경선에 출마를 선언했던 홍준표 의원이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돌연 출마를 포기했다. “당내 야당 본연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겠다”며 출마의사를 밝혔던 홍 의원은 소장파의 리더격인 원희룡 의원의 출마소식을 접한 뒤 당내 중진의원들과 상의 끝에 “대승적인 차원에서 후배에게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 그러나 홍 의원의 출마포기는 당내 복잡한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홍 의원의 출마포기 내막을 들여다보았다.홍준표 의원은 지난 9일 오전 11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정권은 개혁과 지방화의 가면하에 한미동맹의 파괴, 무모한 수도이전 공표 등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계속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야당 본연의 목소리를 과연 한번이라도 낸 적이 있느냐”면서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홍 의원은 또 “야당을 야당답게 선명 야당으로 만들겠다”며 “적당히 ‘웰빙’하는 2중대 정당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홍 의원실 관계자는 “박근혜 대표가 가장 앞서 있어 1위는 힘들어도 2위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홍 의원의 이날 출마선언 이후 3시간 뒤엔 당내 소장파의 대표격인 원희룡 의원이 “당의 변화를 위해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대변할 통로가 필요하다”며 “당을 생동감 있게 바꾸는데 노력하기 위해 젊은 의원들이 집단적인 결의를 해 출마를 선언하게 됐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표의 독주체제로 자칫 맥빠지게 진행될 위기에 놓였던 한나라당 대표경선은 후보등록 마감을 불과 하루 앞둔 상황에서 흥행 바람을 탔다.

특히 홍 의원의 출마는 반 박근혜파의 결집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원 의원의 출마소식이 전해지면서 홍 의원실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를 만났다는 눈치였다. TV 토론 등 경선일정을 점검하고 선거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홍 의원실에 오후 6시 경 이재오 의원을 필두로 박성범, 김문수, 박계동 의원 등 당내 중진급 의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 때부터 의원실 내부는 심상치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1시간 여가 넘도록 회의가 계속됐다.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들의 회의가 길어진다. 지금 장고중이다. 정확히 의견이 모아지지는 않았지만 홍 의원이 출마를 포기할 수도 있다”고 전해 포기가능성을 내비쳤다. 의원실 내부 분위기도 격앙되어 갔다. 곳곳에서 원 의원의 출마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보좌관은 “당초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 홍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자, 곧바로 출마의사를 밝힌 것은 소장파들의 위기감을 드러낸 것”이라며 “홍 의원이 최고위원이 될 경우 자신들의 목소리와 입지가 줄어들 것을 예감하고 이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흥분했다.

그는 또 “원 의원이 정치에 입문할 때 이끌어준 분이 바로 홍 의원인데 최소한의 정치 도의를 저버린 행위”라며 “이처럼 경우없이 행동하면 지금은 잘 나갈지 몰라도 자신들도 결국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홍 의원은 동료 의원들과의 오랜 회의 끝에 출마를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출마선언 후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포기를 택한 것. 한나라당 내부의 복잡한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홍 의원실 관계자는 “다른 지역의 경우 한 명 씩 나오는데 서울에서 두 명이 나오는 것은 모두 지는 것”이라며 “설사 이기더라도 본전이며 지면 커다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고, 의도가 보이는 선거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리에 참석한 의원들도 괘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앞으로 당내 중진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홍 의원은 출마포기를 결심한 뒤 “뜻을 접는 것이 옳은 것 같다”며 “나는 하고 싶지만 후배와 다투는 모습이 좋지 않아 동료의원들이 ‘이번엔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해 출마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또 “어제 서울지역 의원 모임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박성범 의원이 서울 출신 중에서도 한 명이 출마하자는 제안을 했다”며 “원 의원은 가족회의까지 들먹이며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박진 의원은 ‘이라크 문제에 전념하고 싶다’며 포기해 난상토론 끝에 내가 출마하는 것으로 결정났었다”고 출마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출마포기에 대해 “섭섭함은 없다”던 홍 의원. 그러나 앞으로의 당내 행보를 묻는 질문에 “비주류 할 것이다”라고 답한 자조석인 말에는 그의 불편한 심기가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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