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대검 중수부 폐지 문제로 불거졌던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은 노무현 대통령이 송광수 총장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며 존속쪽으로 가닥을 잡아 봉합됐다. 그러나 부패방지위원회에 신설될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이하 고비처)의 기소권 부여 문제로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것. 중수부 폐지 논란, 고비처 기소권 부여논란 등 최근 연이어 빚어지고 있는 청·검간의 갈등을 짚어봤다.참여정부의 첫 검찰인사문제 이후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이 재발된 것은 지난달 중수부 폐지론이 불거지면서다.

중수부 폐지문제로 점화

당시 송광수 총장은 검찰간부 전입 신고식에서 “중수부 폐지는 지난 1년간의 대선자금 수사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검찰의 힘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송 총장의 발언 파문이 확산되자, 청와대도 강경했다. 노 대통령이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돼 왔다”며 “정치적 이해관계나 가치판단 또는 원칙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검찰권 행 사의 합리성과 효율성에 관한 제도개선 과제”라며 송 총장의 발언을 비판한 것. 노 대통령은 특히 “검찰총장의 임기제라는 것은 수사권의 독립을 위해 있는 것이지, 정부의 정책에 관해 일방적으로 강한 발언권을 행사하라고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고 일종의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제2의 검란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았던 중수부 폐지논란은 강금실 법무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법무부와 검찰의 최고책임자로서 국민들에게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검찰총장에게 중수부 폐지 관련 논의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재론하지 않도록 촉구했으며 검찰총장도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재론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말해 일단락지어졌다. 송 총장도 “최근 저의 발언으로 대통령과 많은 분들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사과해 양측의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패방지위원회에 신설되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문제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비처는 검찰 견제용?

고비처는 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이다. 검찰의 사정, 감사원의 감찰, 부방위의 기능을 통합한 사실상 막강한 힘을 가진 사정기구다. 청와대는 특히 고비처의 기능 중 하나가 검찰권 견제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고비처 신설 자체를 달갑게 보지 않는다. 검찰이 도맡아 온 정치인, 고위공직자, 대통령 측근에 대한 수사기능을 모조리 고비처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고비처의 기소권부여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비처가 수사권뿐만 아니라 기소권을 갖게되면 사실상 핵심사정 기관으로 급부상하게 되지만 역할이 겹칠 수밖에 없는 대검 중수부는 기능이 축소되고 자칫 또다시 중수부 폐지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이에 검찰은 고비처에 기소권을 주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고비처의 신설은 결국 검찰권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존의 대검 중수부가 맡아오던 부분을 고비처가 맡게 되면 검찰과 역할이 중복됨은 물론 향후 검찰의 기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검찰의 중립성이 어느 정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터에 굳이 대통령 직속 기관인 부방위 산하에 고비처를 신설하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이 반발하고 있는 이유 중에는 고비처의 수사대상 중에 3,000여명의 검사와 1,500여명의 판사 등 법조인이 포함된다는 점도 있다. 수사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자칫 검찰의 위상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여당, “고비처 기소권 없으면 무의미”

그러나 검찰의 부정적인 견해에 비해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는 고비처가 기소권이 없으면 사실상 무의미한 조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여당 관계자는 “고비처가 독립적인 수사를 하기 위해서는 기소권을 줘야 한다”며 “기소권이 없으면 사실상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 동안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 왔다”며 “고비처는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이 없었던 검찰권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여당 내 기류는 당 수뇌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지난 6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고비처가 수사권만 가질 경우에 검찰의 지휘를 받는 형식이 된다”며 “이런 형태의 고비처는 검찰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고비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박근혜 대표는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 직속의 고비처 신설은 3권 분립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며 “정부가 강행할 경우 적어도 그 수장의 임명은 특별검사처럼 대한변협과 같은 제3의 기관의 추천 절차를 밟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반부패관계기관 협의회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기소권을 고비처에 주지않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대신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견제와 공정성 확보를 위해 고비처에 재정신청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외형상 검찰의 반발에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비처 기소권 부여문제가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김종민 청와대 부대변인은 “고비처 기소권 부여여부 등 오늘 논의된 안은 최종안이 아니라 잠정안이며 향후 당정협의를 통해 최종안을 확정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정협의를 거쳐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 결국 당정협의를 거쳐 국회에서 고비처의 권한과 역할이 어떻게 통과되느냐가 청·검간의 갈등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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