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 턴 간 큰 형제의 절도행각


고려시대에 세워진 사찰인 서울 성북구 보문사에서 복장유물을 훔쳐 달아난 형제가 경찰에 검거됐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달 5일 보문사 불상의 복장유물을 훔친 혐의로 박모(48)씨와 박씨의 형(50)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같은 달 2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 형제는 보문사 대웅전 목조 불상 안에 있던 불경 4권과 복장을 넣는 통인 후령통(候鈴筒) 2점, 발원문(發願文)을 적은 비단포 1점, 한지 2점 등 유물 9점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복장유물은 불상을 만들 때 불상 안에 넣는 불경과 사리, 복식 등의 문화재다. 특히 이들이 훔친 불경 4권은 문화재청 감정결과 보물급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1990년대 후반부터 야심차게 시작했던 사업이 잇따라 실패했다. 갈비가게와 치킨전문점 등을 운영했지만 구제역과 조류독감 파동으로 매출이 뚝 떨어지면서 가게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박씨는 가게에 투자한 돈을 모두 잃고 방황을 하던 중 사찰 문화재 절도범을 만나게 됐다. 범죄의 유혹에 빠진 박씨는 충남과 대구 일대 사찰에서 복장유물을 훔치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1년8개월간 형을 살고 나온 박씨는 재기를 꿈꾸며 식당을 차렸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가게 매출은 기대와는 달리 곤두박질쳤고 오히려 빚만 잔뜩 지고 말았다.


보문사 대웅전 ‘복장유물’ 노린 형제

박씨는 일명 공사판 ‘노가다’를 뛰면서 일당 6만 원을 받고 생계를 어렵게 이어왔다. 불규칙한 벌이에 생활이 궁핍해지자 박씨는 다시 복장유물 절도를 계획하게 됐다. 지난 2월 박씨는 자신의 형을 찾아가 범행에 가담할 것을 제의했다. 박씨는 단호히 거절하는 형에게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두 번 다시 절도하지 않겠다”고 부탁했다.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며 모아뒀던 돈의 대부분을 박씨에게 빌려줬던 박씨의 형은 마음이 흔들려 범행에 가담하게 됐다.

박씨는 교도소 복역 당시 알게 된 문화재 절도범인 이모(51)씨로부터 “옛날부터 탑골승방인 보문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에 전념하는 사찰로 현재까지 한 번도 도난당한 사실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보문사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박씨 형제는 지난 2월 27일 보문사를 사전 답사하는 등 치밀한 범행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높이 80㎝의 석가모니불상과 보현보살불상 속에 든 복장유물을 훔치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지난 3월 5일 보문사 스님들이 새벽 수행 후 쉬는 시간을 틈타 오전 5시39분께 보문사 대웅전에 침입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이들 형제는 완전 범죄를 위해 각종 공구와 락카를 미리 준비,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CCTV에 찍히지 않기 위해 CCTV 카메라 렌즈에 락카를 뿌렸다. 또 준비해온 공구로 불상의 아랫부분을 깬 후 좌대에서 분리했다. 드라이버로 불상의 배 부분을 분리한 이들은 복장 유물을 빼낸 후 달아났다.

박씨 형제가 훔친 복장유물은 묘법연화경을 포함해 모두 9점이었다. 석가모니불상은 보문사 구석에 버렸고, 보현보살불상은 불상만 택시에 태워 절로 돌려보냈다. 불상을 훔치면 악귀가 따라 붙고 벌을 받는다는 미신을 의식한 탓이었다.


도난당한 복장유물, 보물급 묘법연화경

범행 이후 박씨는 훔친 불경 4권을 고미술품 장물업자 안모(46)씨에게 250만 원을 받고 팔아넘겼다. 바로 다음날 안씨는 이 가운데 불경 2권을 다른 고미술품 수집업자에게 1400만 원에 팔고 2권은 자신이 소장했다.

박씨의 형은 동생과 헤어진 후 강원도 춘천으로 내려갔다. 지인의 집에서 머물던 박씨의 형은 후령통 2개를 몸에 지니고 있다가 악몽에 시달린다는 이유로 불태워 버렸다. 보통 후령통에는 금, 은, 칠보, 오향, 오곡이 들어있지만 박씨의 형은 귀금속은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불상은 불교에서 신성하게 여기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불상의 뱃속을 일부러 열어보지 않는다. 때문에 이번에 도난 된 보문사 복장유물도 범인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회수한 유물을 문화재청에 감정을 의뢰, 불경 4권이 묘법연화경인 것으로 확인됐다.

묘법연화경은 현재 보물 1147호로 지정된 것과 동일(同一)본으로 조선 성종 당시인 1470년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가 죽은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번에 회수된 묘법연화경은 왕실에서만 사용하는 먹과 종이로 만들어졌고, 보존 상태도 완벽에 가까웠다.

통상 문화재가 문화재청에 등록되지 않은 상태에서 매매 등으로 유통되면, 최종 취득자가 도난품인지 모르고 매입했다가 가치를 확인하고 문화재청에 보물로 등록하거나 경매사이트 등에서 높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계자는 “복장유물의 도난은 범인 검거가 쉽지 않은데 천우신조다. 보문사 측에서도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CCTV 영상을 확인해 지난달 21일 박씨의 형을 체포했다. 박씨는 수사망이 좁혀들자 지난달 28일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박씨 형제로부터 유물을 사들인 안씨 등을 장물 알선 및 취득 혐의로 검거해 수사 중이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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