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 기자] 작가 박세길의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1980년대 베스트셀러이자 당시 지식인,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검열 정권 아래서 한국 현대사를 새롭고 용기 있게 조명했던 박세길이 최근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으로 돌아왔다. 이번 신작은 IMF 시점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또 그 후를 짚어가면서 청년들의 희생을 강요한 기성세대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책은 한국 전쟁부터 촛불 시위까지 현대사 곳곳을 넓게 들여다보고 있다. 청년들과 독자들이 현대사 책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박세길 작가를 만나 역사학자이자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 열한 가지 질문 뒤에 숨어있는 구체적인 의도와 정신을 들어봤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처음부터 느껴졌다. 어떤 목표를 두고 완성했나. 
▶청년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이 실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역사는 환경에 따라 다양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최근 움직임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쉽게 쓰는 문장은 꾸준한 시도의 결과인가.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이번 책은 편집진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같은 내용을 수없이 반복해 고쳤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은 몇몇 지식인과 정치인이 고백하는 ‘청년들의 아픔은 기성세대의 잘못이다’라는 발언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일러줬다. 기성세대 과오를 비판하는 태도는 다음 저서에도 이어지나.
▶앞으로 계속해야 할 작업이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계속 짊어지고 가야 할 책무다. 새로운 작업 또한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 

-억울하게 처형당하고 고문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한 줄 기록도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극을 볼 때마다 현대사 연구에 매력을 느낀다. 어떤 계기로 현대사를 쓰는 작가가 됐나.
▶1986년도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됐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흔하고 흔한 일이었다.
인천에서 수감생활을 하는데 안에서 주로 하는 게 독서였다. 그 안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를 고민했다. 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면서 ‘역사 속에 답이 있구나.’ 하는 감동을 느꼈다. 감옥 안에서 짧게 역사서를 기술했는데 반응이 상당했다. 그리고 출소 후 쓴 것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다. 한 매체에서는 내 책을 두고 ‘옥(獄)에서 옥(玉)을 구하다’라고 표현했다. 주류 시각과 정반대 시각으로 기술하고 싶었다. 용기가 필요했으며 과감히 실명으로 출간했다. 나와 비슷한 내용을 가명이나 필명으로 냈던 작가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들은 법망에 걸려 탄압을 받았다. 가명이나 필명을 내세웠다는 것 자체를 어떤 꿍꿍이가 있는 것으로 본 것 같다.

-해방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신작을 통해 배운 미국의 존재감은 큰 불편함이었다. 미국에 관한 숨겨진 진실을 모르는 대중이 많다. 당연히 알아야 할 사실을 여태까지 몰랐던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언론의 편향된 태도 또한 문제라고 본다. 대중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언론을 통해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될 수 있다. 이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진보적인 역사책을 읽게 되면 ‘내가 알던 역사는 역사가 아니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사를 조명하는 저자들이라면 앞으로 어떤 책을 내놓아야 할까.
▶역사학자와 저자들이 역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대중이 현실과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다. 역사를 기술하는 것과 관련해 첨예한 논쟁과 대립이 불가피한 이유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역사 인식을 어떻게 심어주어야 하는지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활동해야 한다. 

-진실을 알리는 데 힘쓰는 학자, 작가들이 많은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나. 
▶대학가라는 환경 자체가 제약이 많다. 제도권 안에서 역사연구가 이뤄지는데, 이 안에서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고 자기 소신대로 또 장기적으로 자료를 축적하기는 쉽지 않다.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견제가 활발하기 위해서는 제도권과 비제도권이 서로를 자극하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제도권 밖에서 역사를 많이 조명했다. 역사를 바로 알리는 데 힘쓰는 단체도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역사를 비제도권에서 접근할 때 더 거칠고 솔직한 답변이 나올 수 있다. 역편향의 부담이 있더라도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는 공간이 다시 부활해야 한다. 

-엄혹한 시절 속에서도 민주화를 이뤄낸 부분을 읽고 감동했다. 하지만 그 시절을 이끌고 느껴본 세대들이 왜 오늘날 노동과 민주화 정신을 배신하고 살고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통해 진보의 추락을 자세하게 언급했다.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여기에 휩쓸리는 것을 넘어 오히려(밥그릇 챙기기에) 앞장섰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목격했으면서도, 진보세력의 솔직한 고백과 비판적 성찰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한국 정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아닐까. 실수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반성과 성찰이 있지 않고서는 정치적 낙후성을 면치 못한다.

-젊은 세대기 때문인지, 현대사의 민낯을 아는 순간 보수층과의 갈등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 같다.  
▶기성세대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해줘야 한다. 이번 책에서는 기성세대의 비판을 외환위기 이후로 한정했다. 기성세대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을 때마다 제대로 헤쳐나가지 못했다. 자기 밥그릇만 지켰기 때문에 청년세대에 큰 부담으로 이어졌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북한을 다시 봤다. 북한의 움직임은 미국의 조종과 만행과 관계가 있으며, 북한의 도발을 비판하더라도 북한의 현대사를 알고 있는 것과 무조건적인 비판은 차이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 한 가지 사건만 놓고는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체적인 맥락을 놓고 봐야 한다.

-북한과 북한 역사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할 것 같은데,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정치 상황과 연관된다. 이명박 정부 이후 대북강경 기조로 바뀌면서 북한과의 관계가 많이 위축됐다. 그런데, 정권에 따라 관점이 바뀌는 것 자체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통해 다시 확인하지만,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가진 권한과 결정으로 인한 파장이 비극적이고 엄청나다. 2017년에 어떤 대통령이 나와야 할까.
▶한국 사회는 좌우 구도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는데 이를 깨트릴 수 있어야 한다. 진영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에 근거해서 정치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쉽게 말해 돈 중심이었다.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슨 짓을 해도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더는 이 체제로 갈 수 없다. 2017년 대선에는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담론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등장해야 한다. 청년들의 관심을 끌고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이냐 ‘새정치민주연합’이냐 정도의 선택으로는 힘들 것이다. 2017년 대선을 목표로 책을 구상하고 있는데, 그때는 단순히 몇몇 공약 싸움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미래를 놓고 국민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 박근혜 정부가 여러 가지로 무리수를 두고 있다. 그만큼 절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반적 통념은 ‘안보와 경제는 보수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안보 사고가 더 자주 났다. 경제 지표로 보더라도 성적이 더 안 좋다. 그리고 개선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젊은 세대도 새로운 지도자를 갈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현재는 암울하다.  
▶시대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노무현 정권 때 이를 보여주긴 했지만, 대중문화에 비유한다면, 팬이 스타를 만드는 시대다. 정치 또한 유권자가 지도자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권자 주체시대를 열어 대중과 호흡하는 지도자를 만들어야 한다. ‘노사모’와는 또 다른 그 이상의 단체가 필요하며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를 기획하고 보조할 수 있는 네트워크조직을 구상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하면서 필요한 법률적, 지식적, 재정적 지원을 생각하고 있다.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네트워크로 성장하길 바란다. 2017년 대선에 맞춰 제시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누구나 창업이 가능한 대한민국, 누구나 창업을 하고자 뛰어들 수 있는 대한민국이다. 이 메시지는 청년 세대와 연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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