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치욕을 상징하는 ‘을사오적(乙巳五賊)’이란 말이 있다. 1905년 일본의 강압에 맞서지 못하고 조선조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겨준 을사조약에 서명한 5명의 대신들을 말한다.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 이완용 다섯이 그들이다.

1970년 5월 월간지 사상계(思想界)에 실린 김지하의 담시(譚詩:이야기 시)에도 ‘오적(五賊)’이 나온다. 오적으로 당시 박정희 정권의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꼽았다.

재벌은 ‘왼갓 특혜 좋은 이권은 꿀꺽’한다고 풍자했다. 국회의원은 ‘가래를 퉤퉤, 골푸채 번쩍’ 휘두르며 썩어간다고 했다. 고급공무원은 ‘단것 너무 처먹어서 (이빨이) 새까맣게 썩었구나’며 ‘책상위엔 서류뭉치, 책상밑엔 지폐뭉치’라고 썼다. 장성은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 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라고 했다. 장관은 ‘예산에서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행여나 냄새날라 질근질근 껌씹으며’라고 했다.
오늘 날 우리 국회에는 입법기능을 망치는 5적이 있다. 국회 5적으로는 의회정치의 기본인 다수결 원칙을 죽여 버린 국회선진화법(또는 몸싸움방지법), 개인 신상털기로 빗나간 인사청문회, 호령하거나 모욕주기로 탈선한 국정감사, 의원들의 막가는 상말·막말, 법 만드는 입법 의원이 법을 어기는 탈법 작태 등이 그것들이다.

첫째, 국회 오적으로는 국회선진화법을 들 수 있다. 이 법은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인 과반수 의결원칙을 5분의3(60%)으로 바꿨다. 새누리당은 의석 과반수를 확보했으면도 5분의3을 넘지 못해 야당에 끌려다닌다. 시급한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못해 입법기능을 마비시켰다.

둘째, 국회 오적으로는 탈선한 인사청문회를 꼽을 수 있다. 인사청문회는 후보의 직무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의원들은 확실한 증거도 없이 후보자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며 죄인 다루듯 호통친다. 청문회 무용론이 제기된다. 청문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업무 능력과 도덕성 문제를 나누어야 하며 도덕성 부분은 비공개로 해야 한다.

셋째, 국회 5적으로는 변질된 국정감사를 빼놓을 수 없다. 국정감사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했는지 점검하고 특정 사안을 집중적으로 알아보기 위한 데 있다. 그러나 의원들은 업무수행 점검엔 소흘하고 증인에게 망신주는 데는 다투어 나선다. 허세를 보이고 언론에 튀기 위해서다. 지난 9월17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한국과 일본이 축구시합을 하면 한국을 응원하느냐”고 물었다. 국사를 다루는 국정감사가 아니라 한량들의 술자리 잡담에서나 나올 말이었다.

넷째, 국회 5적으로 상말·막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11월1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강창일 의원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에게 “저xx 깡패야? 어디서 책상을 쳐!” 소리쳤다. 국회가 ‘깡패’ 수준에 불과함을 반영한다.

다섯째, 국회 5적으로는 법을 만드는 의원이 법을 어기는 작태를 들 수 있다. 지난 8월의 경우만 해도 여야는 ‘정부기관 특수 활동비’를 둘러싼 갈등으로 8월31일로 예정되어 있던 8월 임시국회의 마지막 본회의를 무산시켰다. 또 8월12일 제출된 이기택 대법관 임명동의안 처리도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 제출 후 20일 이내’로 완료토록 되어 있으나 20일을 넘겼다. 둘 다 법을 어긴 것이다. 매년 예산안 처리도 법정시한을 넘기기 일쑤다. 법을 앞장서서 지켜야 할 사람들이 상습적으로 법을 유린한다.

국회 5적도 ‘을사오적’이나 김지하의 ‘오적’ 못지 않게 나라를 망친다. 국회의원은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휘두르지 말고 국회 5적 퇴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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