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인사청문회법은 지난 2000년 제16대 국회가 만든 법률이다. 이 제도 도입으로 국회 입장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 할 수 있도록 됨에 따라 정부 입장에서는 고위급 인사권 행사에 많은 압박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업무능력이나 자질을 검증하는 본래의 청문회 목적과 달리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사생활 뒤지기 등의 저질 청문회 비난이 빗발친데 대한 대책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는 앞으로의 청문회 방식도 같은 수준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오죽하면 청문회 망신을 우려해서 정부의 입각 제안을 고사하는 바람에 인재 모시기가 모래밭의 구슬 찾기보다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터다. 이 법안시행 후 총리지명을 받고도 청문회 통과를 못해 낙마한 후보가 2002년 7월의 장상 총리지명자를 비롯 그 직후 같은 해 8월의 장대환 지명자의 낙마 등 현재까지 적지 않은 인사들이 수모를 겪어야했다.

이 바람에 ‘너나 잘하라’는 식의 국회의원 후보들에 대한 어떤 식이든 청문 검증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까지 됐다. 최소한의 예절조차 벗어난 수준이하의 소모적이고 정략적 의도의 청문회는 여야 간의 정쟁만 유발시키고 전혀 실익이 없다는 청문회 무용론이 힘을 받는 상황을 국회 스스로 만든 것이다.

권력에 대한 중요한 견제 수단으로 제정된 청문회법을 이용해서 한때 국민가슴을 시원하게 했던 이른바 ‘청문회 스타’를 노리다가 오히려 ‘똥별’로 굴러 떨어지는 저질 의원들도 그동안 적지 않았다. 이런 막장 청문회를 보다 못한 일부 유권자들은 그럼 대통령 후보 청문회도 당연히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반응을 나타냈다. 따지고 들면 대통령 후보 검증이 더 절실한 것 아니냐는 논리다.

실제 유력 차기 대통령 후보군에 올라있는 어느 인사가 몇 달 전 관훈클럽 토론에 불려 나와 참여 패널로 부터 “만약 대통령 후보 자격에 관한 청문회법이 지금 시행 되고 있다면 통과할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때 그는 지금의 청문회법 운영 방식으로 봐서는 도저히 자신 없다고 주저 없이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사생활은 물론 가족 내의 문제까지 연좌되는 현실을 이겨낼 재간이 없어보였던 모양이다.

사실 우리 청문회법으로 보면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그 밑의 각료들만이 엄중하기보다 치졸한 잣대에 의해서 사생활 침해에 인권 침해 논란까지 빚고 있는 현실이다. 말하자면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의 사상문제가 어떻든, 사생활 시비가 또 어떠했든, 축재관련 비리가 있고 없고 간에 그 모든 논란거리를 일고의 따질 가치조차 없는 악의적 흑색선전이라고 밀어붙이면 그만인 것이다.

미국은 백악관의 사전검증제도를 통해 개인적격 여부를 판단 후 지명되면 국회 해당 상임위에서 임명후보자를 사전 질의답변 형식으로 서로 심사진행을 한다. 이런 상임위 청문회를 통과한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본회의에서 구두동의 방식으로 결정하는 방안을 택하고 있다. 그러면 흑색선전이고 뭐고 싸움질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국회 청문회법으로는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인재난을 겪을 수밖에 없게 돼있다. 누가 높은 자리, 그것도 불과 1~2년짜리 총리나 장관 한번 해먹겠다고 그 수모를 감수하려들 것인가. ‘가문의 영광’ 좋아하다가 자칫 ‘명예의 몰락’이 될지도 모를 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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