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는 조직이다. 그러나 한 때 조직의 수장이었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비밀 엄수’ 의무를 무시하고 남북 간의 비사(秘史)를 공개하는 등 ‘음지보다 양지를 지향’하는 화려한 변신으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 전 원장이 국정원에 의해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와 저서 출간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핫라인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러나 파문이 일자 “두 정상이 직접 통화한 적은 없다”고 말을 바꿨다. 한마디로 ‘황당 코미디’다. 이런 인물이 국가 정보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국정원의 수치이고 국가의 망신이다.

국정원직원법 17조 1항은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전 원장의 발언은 사실이든, 아니든 모두 문제가 된다. 그 발언이 사실이라면 퇴직 후에도 직무상 비밀누설을 금지한 국정원직원법에 위반된다. 사실이 아니라면 전직 정보기관 수장으로서 자신의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국가안보와 관계된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전 원장의 가벼운 입과 처신은 그 도를 넘고 있다. 그의 구설(口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계 첩보사에 남을 코미디 같은 일만 골라서 했던 것이다.

그는 국정원장 재직 당시 기장군민 수백 명을 국정원에 초청했다가 사전선거운동이 아니냐는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으며, 모교 동창회 홈페이지에 자신의 휴대폰 전화번호를 공개해 국민적 빈축을 산 적이 있다. 2007년 9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선교단 석방교섭 현장에 선글라스 요원을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해 물의를 빚었다. 2007년 12월 대선 전날 북한에 들어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뒤 “이명박 후보 당선이 확실시 된다”는 등의 발언을 했고, 대선 후 이 대화록을 유출했다. 이 당선인 측에 줄대기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결국 2008년 사과문을 발표하고 국정원장 직에서 물러났다. 2010년 10월에는 ‘다시, 한반도의 길을 묻다’라는 책 내용이 문제가 돼 국정원에 의해 직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2011년에도 일본 잡지 <세카이>에 ‘천안함 폭침’을 ‘천안함 침몰’로, ‘연평해전’을 ‘연평패전’이라고 부르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천안함 폭침 관련) 한국 국방부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적(利敵) 주장을 폈다. 남북정상회담 관련 미공개 내용을 기고했다가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김 전 원장은 자신이 2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여 추진됐다면서 회담 성사 경위는 물론 구체적인 회담 내용까지 공개했다. 남북정상회담이 마치 자신의 무용담인 양 과시한 것이다. 참으로 부적절한 처신의 극치이자 노무현 정부 후반기 국가 최고 정보기관을 이끌었던 사람의 자질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또다시 ‘자기 과시병’이 도져 노이즈 마케팅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이번 발언이 ‘총선용’이라는 얘기다. 그는 고향(부산 기장)에 사무실을 개소해 출마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은 남북관계가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이럴 때 일수록 지도급 인사들은 국익을 위해 자중자애해야 한다. 재임 중 취득한 국가기밀은 보안이 유지되어야 하며, 사적 이익 도모를 위한 어떤 행태도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된다.

≪논어≫ ‘이인(里仁)편’에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는 말이 나온다. 국가 기밀을 다루는 중책을 역임한 자가 사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재임 중 취득한 비밀을 발설했다면 ‘소인배(小人輩)’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차제에 선출직 국민의 대표로 나갈 사람은 애당초 국정원장을 맡아선 안 된다. 과거 국정원장 출신의 국회의원이 있었지만, 잘못된 선례라 하겠다. 국정원장은 다음 자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임명직의 마지막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만큼 정권(대통령)과 명운을 함께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김 전 원장은 ‘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이라는 회고록을 최근 출간했다. 현 국정원장의 허가 없이 발간했기 때문에 당연히 국정원직원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국정원과 검찰은 철저한 조사와 엄정한 사법절차를 통해 ‘노-김 핫라인 밀담’의 진상(眞相)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국정원직원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위법 사실이 있으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종철 논설주간>

우종철 논설주간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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