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총동원해 탈세 나섰다

부가가치세 75억 관세 12억 등 모두 87억 탈루
“금괴 매입·가공·수출과정 세무당국 철저한 감독 필요”


[최은서 기자] = 수출용으로 수백억 원 상당의 금괴를 사들인 뒤 국내에 불법 유통한 ‘금괴 밀매단’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 일당은 바지사장 명의로 법인을 설립한 후 수출용 금괴를 수출한 것처럼 허위 신고해 수십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이들 밀매단은 육안으로 금제품과 모조 금제품을 쉽게 구별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했다. 또 이들은 관계기관의 부실한 감시시스템과 수출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수출품·수입업체에 대한 검열이 느슨하다는 점을 노렸다.

서울 종로에서 20년 간 귀금속 도매업자로 일해 온 이모(60·여)씨는 국제 금시세가 상승하기 시작하자 범행을 계획했다. 이씨는 수출장려정책의 일환으로 금 가공 수출업자의 금 매입세가 감면되고 수출시 부가가치세가 환급된다는 점을 노렸다.

수출용 금괴 국내 불법유통

이씨는 구체적 범행 계획을 마련하고 바지사장 물색에 나섰다. 이씨는 아들과 여동생, 귀금속 계통 동료 등 6명에게 범행 계획을 털어놓고 “조세 포탈 후 일정 이상의 수익배분을 보장하겠다”고 설득했다. 이후 이씨는 바지사장 명의로 6개의 귀금속 도매업체를 순차적으로 설립·운영했다. 이씨는 한 도매업체당 6개월~1년 단위로 운영했으며, 매달 바지사장에게 월급 명목으로 200만~400만 원을 지급했다.

바지사장 명의로 귀금속 도매상을 세운 이씨는 금 제련업체에서 면세용 금괴를 사들였다. 이씨는 2004년 10월부터 2008년 1월까지 J골드, S골드, B골드 등 6개 업체를 순차적으로 운영해 800억 원에 달하는 약 5.3t의 금괴를 매입했다.

이씨는 수출용 원재료로 사용해야하는 면세용 금괴를 금 도매업자들에게 금괴 상태로 내수 판매했다. 이씨는 종로 귀금속 중간 유통업자들을 통해 금괴를 불법 유통했다. 이씨는 부가가치세 10%가 면제되는 점도 파고들었다. 이 같은 수법으로 75억 원 상당의 부가가치세를 탈루했다.

이 뿐 아니다. 이씨는 일본 오사카시에 있는 유령업체 B사에 수출한 것처럼 허위수출계약서를 작성하고 세무당국에 신고했다. 면세용 금괴를 제련업체로부터 매입 후 가공 금제품으로 다시 수출할 경우, 제련업체가 금을 수입할 때 납부한 관세 3%를 환급받을 수 있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씨가 부정환급 받은 금액은 모두 12억 원에 달했다. 이처럼 이씨는 해외 유령법인을 설립하는 등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수사망을 피해 다녔다.
이씨가 보따리상을 통해 일본 유령업체로 수출한 것은 도매상가 등지에서 대량으로 구입한 모조 금제품으로 도금된 구리 목걸이였다. 이씨가 불법 수출한 도금된 구리 목걸이는 금목걸이와 무게도 비슷해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이씨는 고가의 금제품을 수출할 경우 육안으로는 진품 여부를 구별하기 어렵고, 매번 성분검사 등 진품여부 확인이 곤란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보따리상을 통해 수출된 모조 금제품들은 값어치가 없는 눈속임용이었기 때문에 공항 주변에서 곧바로 폐기처분했다. 이씨는 보따리상에게 대가로 20만~30만 원을 건네줬다.

관세 및 밀매 차익 노려

이씨의 탈세는 기존의 ‘금괴를 이용한 탈세’ 수법과 차이를 보였다.

기존의 금괴 탈세는 외국 업체, 수입업체, 도매업체, 수출업체, 외국 업체로 이어지는 유통 고리에 실운영주가 위장거래법인을 끼워넣는다. 이후 실운영주가 운영하는 수출업체가 가공해 금제품을 수출한 것처럼 신고해 국세청으로부터 부가가치세를 부정 환급받게 된다. 다시 말해, 여러 개의 위장업체를 거치는 동안 부가가치세액 만큼 탈루됐기 때문에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금괴를 수출할 수 있는 것이다. 수출 차액과 부정환급 받은 부가가치세로 이익을 실현하는 구조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씨의 탈세는 실운영자가 배후에서 여러 개의 위장업체를 운영한 것으로 관세와 밀매 차익을 노렸다. 기존의 수법은 주범이 최종거래자 역할을 한 반면, 이씨의 수법은 주범이 배후 조종자 역할을 한 것도 차이를 보인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 관계자는 “모든 돈 거래 및 관리는 이씨가 했으며 현금으로만 거래해 계좌거래가 단 한 건도 없다”며 “이씨는 진품을 수출했다고 주장하나 진품이 넘어간 흔적이 없다”고 전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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