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잡는 무적해병 김 상병 총탄에 무너졌다

(위)지난 6일 오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해병대 총기난사 희생자 합동영결식에서 희생자 유해와 유가족이 영결식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아래)국회 국방위원회가 지난 7일 ‘해병대 총기사건’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자료로 제출된 총기사건 개요도. photo@dailypot.co.kr

“기수열외 당하진 않았지만 가혹행위 당했다”…군의 기존 설명과 달라
해병대 출신 A씨 “김 상병이 심각한 치욕 겪었을 가능성 높다”


최은서 기자 = 지난 4일 강화도 선두리 해안마을에서 총성이 울렸다. 관심 사병이었던 김모(19)상병이 해병대 2사단 강화도 해안 소초 내무반에서 부대원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 것이다. 김 상병은 탈취한 K-2 소총 여러 발을 난사한 다음 격실에서 수류탄 1발을 터트려 자신도 부상했다. 총기사고로 4명이 사망하고 김 상병을 포함한 2명이 부상했다. 이후 총기사고의 공범으로 정모(20)이병이 지목됐다. 사고원인으로 해병대의 고질적 병폐인 ‘기수열외’가 지목됐다. 기수열외란 입대기수를 인정하지 않고 후임병들에게 하극상을 허용하는 해병대식 집단 따돌림을 말한다. 이후 해병대 기수열외는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김 상병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기수열외를 당하지 않았다”고 진술해 수사 당국을 당혹케 하고 있다. 반면 공범 혐의를 받고 있는 정 이병은 “선임병들로부터 수차례 가혹행위를 받았다”고 충격적인 가혹행위들을 진술했다.


김 상병은 “기수열외를 당했느냐”는 ‘해병 2사단 총기사고수사본부’ 수사관의 물음에 “기수 열외를 당하진 않았지만, 기수열외를 보니 나도 곧 당할 것 같았다”고 답했다고 해병대 총기 사건 수사본부장 권영재 해군대령이 지난 7일 밝혔다.

“곧 기수열외 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부대 내에 기수열외는 있었으나 김 상병이 부대원들로부터 직접적 기수열외를 당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김상병의 말로 미뤄 볼 때, 김 상병의 범행 동기에는 기수열외에 대한 공포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김 상병의 진술은 지난 5일의 진술과 엇갈린다. 김 상병은 지난 5일 사고조사반의 조사에서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 구타와 왕따, 기수열외는 없어져야 한다”고 자필로 진술했다고 같은 날 국방부 관계자가 전했다. 이어 김 상병은 “OOO 주도로 후임병이 선임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고 답한 바 있다.

김 상병은 ‘기수열외를 당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면서도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사본부 측은 “김 상병은 일부 선임에게 가혹행위를 당했으나, 후임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수사본부 측은 김 상병이 ‘죽이고 싶다’고 한 OOO 일병과 김 상병의 관계에 대해 “소초원 진술에 따르면, OOO 일병은 김 상병보다 한 살 많았으며 근무를 아주 잘했으며 선임자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며 “반면 김 상병은 부대 적응이 잘 안됐고 선임자에게 질책을 받고 따돌림도 당했다”고 전했다. 이어 “OOO 일병이 김 상병에게 선배 대접을 깍듯이 하지 않자 미움이 싹트게 됐다고 동료들이 진술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앞으로의 수사방향은 ‘개인의 군 부적응 문제’로 바뀔 공산이 적지 않다.

“기수 열외 진실은 따로 있다”

해병대 출신자 A씨는 “군 수사 발표 내용을 미뤄 짐작컨대 단순한 기수열외 외에 다른 내막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A씨는 “해병대에서 기수열외를 당하게 되면 존재 자체가 부정된다. 김 상병이 정 이병과 범행 모의를 한 것만 보더라도 기수열외를 당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 상병이 “기수열외를 당하지 않았다”는 진술이 사실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A씨에 따르면 총기와 탄약을 탈취하기 위해선 세 개의 열쇠를 확보해야 한다. 무기가 있는 상황실 열쇠 한개와 총기 보관함 열쇠 두개가 바로 그 것. A씨는 “김 상병 혼자 세 개의 열쇠를 확보하고 총기와 탄약을 탈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 상병 혼자 이 모든 걸 계획·실행하기는 어렵다”며 “더구나 3~5발의 공포탄을 소진해야 실탄을 쏠 수 있다. 이런 정황을 미뤄봤을 때 김 상병이 기수열외를 당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A씨는 “해병대는 혹독하게 괴롭힘을 당해도 위에 보고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해병대는 고참의 괴롭힘에 대해 상부에 보고하는 행위 자체를 나약함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라며 “고참의 부당행위에 대해 상부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이상 기수열외를 당할 일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이어 A씨는 “상병 5호봉만 되도 실세로 병장의 권한을 압도한다. 김 상병이 2~3호봉만 되도 총 쏠 이유가 없다”며 “김 상병이 누군가로부터 심각한 치욕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 해병대 관련 카페에서는 김 상병의 범행동기로 ‘전입병 부적응’ 또는 ‘고문관’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 상병은 지난해 9월 강화도 부대에 전입했다. 이 카페에 따르면 해병대 대원들은 기존 배치된 부대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타 부대로 전출된다. 이때마다 ‘인계사항’이란 이름으로 전력이 따라다니게 돼 새로운 부대에 전입되더라도 적응이 쉽지 않다고 한다. 전입병이었던 김 상병이 부적응으로 마찰을 빚어오다 사고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 카페에 따르면 고문관은 해병대 각종 훈련에서 낙오하거나 병영생활이 원활하지 못해 왕따 당하는 해병을 말한다. 고문관의 경우 해병임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에게 해병대우를 받지 못해 심각한 열등의식에 시달린다고 한다. 김 상병의 열등의식이 사고로 이어진 것이라는 해석이다.

정 이병
“성기 훼손 위협 당했다”


한편 지난 7일 권영재 해군대령은 브리핑을 통해 가혹행위에 대한 정 이병의 진술 내용을 공개했다.
정 이병은 진술에서 “모 병장이 ‘병장은 하나님과 동급이다’고 한 뒤 성경책에 불을 붙여 황급히 끄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모 상병은 정 이병의 목과 얼굴에 ‘안티프라민’을 바르게 한 뒤 몇시간 동안 씻지 못하게 했다고 털어놨다. 이 뿐 아니다. 심지어 모 병장은 정 이병의 성기를 훼손하겠다며 전투복 하의 지퍼 부위에 에프킬러를 뿌린 뒤 불을 붙이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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