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가 느껴지는 사람에게 우리는 신뢰를 느끼고 편한 마음을 갖는다. 반대로 뭔가 늘 초조해 보이고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정해 보이는 사람을 대하면 믿음은 고사하고 덩달아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빼앗길 것이 많거나 자신에 대한 안팎의 도전을 느끼면 누구라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 동물적 생존 심리다.

때문에 우리 인간은 사려 깊은 인품과 내공을 평가하고 그의 지도력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지난 대선 때 과반에 가까운 48%의 국민 지지를 받고 그에 힘입어 오늘의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을 이끌고 있는 문재인 대표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정치적 현안에서 여권과 부딪칠 때마다 자신의 정치력보다 당내 분위기를 악화시켜 공통분모를 만들려고 하는 행위 따위는 야당 대표 특유의 투쟁적 리더십이라고 치자.

그렇지만 걸핏하면 거리로 뛰쳐나와 관심 없다는 국민들을 선동하려 들고, 반박 논리가 부족할 때마다 국민을 팔고 나서는 이유가 뭔가. 말하나 마나 아직도 48%의 유권자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착각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 어떤 방법으로 대선 당시 그만한 지지를 받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이번 역사 국정교과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반대할 명분은 없는 것이다. 다만 정부 여당은 왜곡된 부분을 선명하게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하고, 이를 바르게 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감대를 형성시켜야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뿐이다. 때문에 정부는 이에 관한 충분한 설명으로 공감대를 넓혔다고 본다.

그럼에도 국민이 우려하는 대목은 혹 국정교과서가 일부 친일세력을 미화시키고, 독재정권을 비호하는 작업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만 아니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라는 이유로 무턱대고 반대하고 매도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 박 대통령 말마따나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국정교과서의 집필진 면모가 다 짜여진 것도 아니고, 구체적 내용 발표도 없는 터에 야당대표가 국민 선동부터 하고 나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문재인 대표의 대여 접근 방식이 이러니 소위 텃밭이라는 호남에서 조차 차기대선후보 지지도에서 영남당이라는 새누리당 대표에게 밀리는 최대의 수모를 자초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정치적인 쟁점도 민생을 앞지를 수는 없다. 민생이 주저앉고 있는 판에 이런 선동정치는 스스로 배격해야 함이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문 대표는 늘 이렇게 쫓기는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동요하는 당내 강경세력을 차분히 설득하는 길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민생이 먼저라는 전제로 우선 국정교과서 편찬위의 구성을 지켜본 뒤 문제가 있어 보이거나, 편집진의 편집방향이 편파적이어서 오히려 역사뒤집기라는 여론이 일어날만할 때 문 대표의 대여투쟁 명분이 확실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그가 국민을 위해 용기 있게 일어설 때와 앉아야 할 때를 현명하게 가릴 줄 아는 상황적 판단이다. 국민이 결코 어느 정당의 당리당략에 놀아나는 ‘봉’이 될 수는 없다. 19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올스톱 되는 현실에 불과 다섯 달 남짓한 내년 4월에는 제20대 총선이 실시된다. 지금 유권자들 마음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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