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관계자는 새로 제작될 국정 역사교과서에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기존의 ‘정부 수립’을 ‘국가 수립’으로 교체한다는 말이다. ‘정부 수립’과 ‘국가 수립’은 의미가 크게 다르다. ‘국가’는 국민의 총체적 집합체인데 반해, ‘정부’는 국가 구성 4개 요건인 국민·영토·주권·정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정부’는 국가의 존속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행정부·입법부·사법부로 구성된 통치기구이며 특정 정파나 파벌에 의해 지배된다. 그러나 국가는 정파나 파벌을 떠나 모든 국민의 총체적 주체이고 정부의 상위체계이다.

새 국정 교과서에서 ‘1948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기하게 되면 그해 ‘정부’ 수립만이 아니고 국가가 건립되었음을 의미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 이전의 보수 정권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 건국’ 또는 ‘대한민국 수립’ 등 국가 건립으로 써왔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교과서는 ‘대한민국 건국’을 ‘정부 수립’으로 낮췄다. 그밖에 김 정권은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도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라는 대목을 지우고 ‘38도선 이남에서의 유일 합법정부’라고 축소시켰다. 대한민국은 ‘38선 이남’에 국한 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38선 이남 합법정부’ 주장은 남한이 38 이북을 실효지배하지 못한다는 데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굳이 ‘38선 이남’을 들춰내 부각시킬 필요는 없다. 우리 헌법 3조는 우리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명기, 한반도 전체를 우리 영토라고 했다는 데서 그렇다. 유엔도 1948년 12월 결의안에서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고 선언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좌편향의 검인정 역사교과서는 북한 정권 출범에 대해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라고 기술, 국가 수립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출범에 대해선 ‘정부 수립’으로 낮췄으며 ‘38선 이남에서의 합법정부’라고 한 데는 분명이 속내가 숨어 있다.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에 그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데 있다.

더 나아가 좌편향 쪽에서는 대한민국이 1948년 수립된 것이 아니라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 때 건국된 것이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국가 건국으로 본다는 건 옳지 않다. 말 그대로 “임시 정부”이다. 국가란 앞서 밝힌 대로 국민·영토·주권·정부 네 가지가 갖춰져야 하는데 그 때는 망명 정부로서 그렇지 못했다. 다만 ‘임시정부’와 관련해서는 우리 헌법 전문(前文)대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족하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민주주의와 공화제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국가 수립을 ‘임시정부’로 거슬러 올라간 의도는 1948년 이승만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한 데 있다.

반대로 우편향 측이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라고 주장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되었고 그해 유엔이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던 당시로선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후 북한은 남한과 함께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국제법적으로 주권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남한은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북의 국가적 존재를 인정해왔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에서도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란 국호와 정부 직위를 명시, 실질적으로 서로 상대편이 국가임을 인정했다.

어쨌든 1948년 대한민국 탄생은 ‘정부 수립’으로 그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입각한 ‘국가 건국’이다. 좌편향 측이 북한에 대해선 ‘국가 수립’이라면서도 남한에 대해선 ‘정부 수립’으로 격하시킨 것은 붉은 이념에 취해 판단력을 상실한 탓이다. 대한민국 국가는 1948년 건립된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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