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을 요동치게 했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은 닷새 만에 일단락 됐다. 안 원장이 최고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에도 불구,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며 서울 시장 출마를 접은 것이다. 그동안 안 교수는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높은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낙선한 박찬종 변호사와 비교됐다. 정치권에서도 ‘안철수 신드롬’에 박 변호사 사례가 회자됐다. 박 변호사는 그동안 “안 원장이 정당과 연계 없는 순수한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지난 7일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박 변호사는 안 원장의 후보단일화 결정에 대해 허탈한 심경을 감추지 않으며, 1995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비사에 대해 털어놓았다.

안철수 지지율 박원순에게로 온전히 가지는 않을 것
안철수 불출마로 다시 찾아온 지방자치 개혁 기회 날아가


박 변호사는 이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안 원장이 정당과 연대하지 않는 순수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길 바랐으나 불출마를 선언해 서운하고 안타깝다”며 무소속 출마를 제안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지방자치에 정당과 국회의원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국회의 여야 대립 개념을 확장해 지방자치에까지 여야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은 위헌이다”며 “지방자치는 주민자치이기 때문에 주민이 스스로 일을 결정하도록 해야 하는데 왜 중앙의 정당이나 국회가 개입하느냐”고 반문했다.

정당연대 이뤄지면
선거 의미 없어


박 변호사는 이어 “외교 안보 국방 법률 세금 한·미FTA 등은 여야가 대결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는 그런 사안이 없다”며 “지방자치에 정치가 끼어들게 된 원인은 공천제다. 공천제를 폐지해 지방자치에서 여야 개념을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변호사는 박 상임이사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박 상임이사는 정당 연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정당 색깔을 입게 되면 자기를 지지해준 정당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며 “정당연대가 이뤄진다면 선거는 의미가 없다. 단지 ‘누가 되고 안 되고’일 뿐 지방자치의 근원적 개혁을 기대할 계기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지방자치에 정당이 개입하면 안 되는 사례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꼽으며 여야 간의 정국 주도권 다툼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선거판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사활을 건다”며 “도대체 누구를 사활인가. 이것이 박근혜 전 대표, 홍준표 대표, 나경원 최고위원의 사활이자 손학규 대표, 천정배 최고위원, 정동영 최고위원의 사활이지. 이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사활이냐”라며 반문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 간 흙탕물 싸움을 언급하며 “X물에 튀길 X들”이라며 정치권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박 변호사는 안 원장과 박 상임이사의 단일화 효과에 대해서는 “안 원장에 대한 지지율이 박 상임이사에게로 온전히 가지는 않을 것이다. 두고 봐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안 원장 신드롬’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 ‘국민의 정당에 대한 불신’을 우선으로 꼽았다. 그는 “정당의 계속되는 파벌투쟁, 돈 공천 등 부패, 밀실야합 공천으로 인한 빈번한 다툼 등으로 인해 국민들이 불신을 가지게 됐다”며 “기존 정당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혐오감으로 인해 안 원장이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만으로도 국민적 지지가 들불처럼 일어난 것이다. 또 40세 이하 젊은이들에게는 안 원장이 신선함을 안겨 준 것 같다”고 진단했다. 또 “정치적 행보가 전혀 없던 사람인 안 원장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대적할 정도로 지지를 받은 것으로 미뤄 틀림없이 서울시장에 당선 된다고 봤는데 실망이 컸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자체 선거 정당 공천 폐지해야

그는 이번 ‘안철수 신드롬’으로 인해 회자되는 1995년 서울시장 선거 관련 비사에 관해서도 털어놓았다. 당시 박 변호사는 무소속으로 서울시장에 출마해 압도적인 지지로 돌풍을 일으켰다. 박 변호사는 선거 직전까지 40%에 육박하는 여론조사 지지율로 여야 후보를 모두 앞섰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선 DJP 연대와 박 변호사의 ‘유신 지지’ 발언 등이 겹치면서 선거결과 조순 민주당 후보(42.4%)에 이은 33.5% 득표율로 낙선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6월에 선거가 치러졌는데 1~2월에 걸쳐서 DJ는 문희상 의원을 보내고 JP는 김용채 의원을 보내 당 공천을 제안했다”며 “양 쪽에서 ‘이름만 빌려주면 조직이 총동원돼 홍보를 할테니 지정한 시간에 가서 연설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 했다”고 밝혔다.

이에 박 변호사는 오히려 역제안을 했다. 그는 “일본은 지방자치단체장의 80%가 무소속으로 정당들은 아이노리(あい-のり, 합승공천) 제도를 통해 출마후보 지지선언을 한다”며 “다시 말해 성질이 다른 정당이 출마 후보 한 사람을 놓고 지지하는 것이다. DJ와 JP도 그렇게 한다면 얼마나 아름답겠느냐고 역제안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합승공천이 우리 정치 현실에서 통했겠느냐. 결국 DJ와 JP가 연대해 조순 후보를 불러내 연합공천했다”며 그 배경에 대해서는 “당시 DJP는 50대 중반인 내가 무소속으로 당선되면 세대교체 바람이 불 것을 우려했다. 대선출마를 염두에 뒀던 DJ와 JP는 위기감에 연대를 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맹주들인 3김과 대결한 상황에서 33.5%의 지지율을 얻은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33.5%의 지지율을 얻은 것이다. 사실상 계란으로 바위치기 였는데 엄청난 득표율을 기록한 셈이다”며 “나는 3김에게 저항했던 사람이다”라며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는 이어 “33.5%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국민들이 3김 족쇄에서 아직 못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야속했다. 3김 벽은 너무 높았다”며 “당시 내가 당선됐으면 지방자치는 달라졌을 것이다. 기를 쓰고 전국적으로 사람을 동원해 지방자치 정당공천 폐지를 추진했을 것이다. 이번 안 원장의 서울시장 불출마로 다시 한 번 찾아온 지방자치 개혁 기회가 넘어간 셈이 됐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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