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말살 정책(?) ‘눈총’


대학구조조정 통해 등록금 인하· 경쟁력 강화 시도

정부가 드디어 대학에 대한 살생부를 꺼내들었다. 명목은 비싼 등록금을 완화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없는 대학을 퇴출시켜 경쟁력을 심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평가에 따라 17개 학교는 당장 내년부터 학자금대출을 제한받게 됨에 따라 신입생을 받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학교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과연 정부의 평가 기준은 문제가 없는지 살펴본다.

교육과학기술부와 대학구조개혁위원회가 2012학년도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 평과결과 및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하위 15%에 해당하는 대학에 응시하는 수험생의 경우 이를 참고할 수밖에 없게 돼 이에 해당되는 대학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신입생들의 수가 줄어들어 향후 학교를 폐쇄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릴 수 있는 위기를 맞게 됐다.

다만 정부는 재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 마련 중인 대학생 등록금 지원사업은 유지 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평가는 전체 346(대학 200, 전문대 146)개 대학 중 평가에 참여하지 않는 종교계 대학 15곳을 제외한 331개 대학에 대해 실시됐으며, 평가 결과 43개 학교가 재정지원 제한 대학(대학 28, 전문대 15)으로 선정됐다. 이중 17개(대학 9, 전문대 8) 학교는 학자금대출 제한 대학으로 선정됐다.

학자금대출 제한 대학은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선정된 학교 중 절대지표 2개 이상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된다.

이번 평가는 정부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등록금 부담 완화와 그에 따른 대책이 구조조정과 병행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넓히면서 추진됐다.


대출제한 대학 17개 대학 ‘어떡하나’

이번 정부 평가에 따라 43개 학교는 정부재정지원이 제한된다. 그중 17개 학교는 대출제한 대학으로 분류되고 ‘제한대출 그룹’과 ‘최소대출 그룹’으로 다시 한 번 나뉜다.

‘제한대출 그룹’으로 분류된 13개 학교는 등록금의 최대 70%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며, ‘최소대출 그룹’으로 분류된 4개 학교는 등록금의 최대 30%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다.

단, 정부는 학자금 대출제도가 서민가계의 학자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임을 감안해 가구소득 7분위 이하인 학생의 경우에는 제한 없이 대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대출제한 대학 확정 발표 전 수시모집으로 2012학년도 대출제한 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 신입생에게는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학자금대출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교과부와 대학구조개혁위원회는 이번에 선정된 학자금대출 제한 대학을 중심으로 9~11월 중 현지실사를 거쳐 경영부실대학을 선정하고 이들 대학에 대해 집중적인 컨설팅과 학교 통폐합 등 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는 별도로 교과부는 비리가 포착된 명신대학교와 성화대학에 학교폐쇄 계고를 통지했다.

명신대학교의 경우 등록금 개인계좌 개설 후 6억3000만 원 불법사용, 전 총장 생계비 등에 2억6000만 원 사용, 수업일수 미달 학생 2만2794명에 출석인정 및 학위부여 등의 이유를 들어 이달 27일까지 시정요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학교 폐쇄 및 임원취임승인취소 등의 절차에 들어간다.

성화대학의 경우도 전 총장 65억 원 횡령, 전임교원 및 직원 임용 부적정, 수업일수 미달 학생 2만3848명 출석인정 및 학점부여 등을 지적하고 내달 1일까지 이행하지 않으면 학교폐쇄 절차에 들어간다.

만약 두 학교에 대해 학교폐쇄 결정이 나면 2000년 광주예술대학교, 2008년 아시아대학교에 이어 3, 4번째로 폐쇄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정부가 재정지원 제한 대학과 학자금대출 제한 대학으로 선정한 대학들은 일단 정부의 발표 결과를 수용하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교육부 발표에 대학들 내부적으로 반발

경남대학교의 경우 총장명의로 공식입장을 통해 “이 위기를 대학 발전의 기회로 삼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대학이 되겠다”며 “장학금 지원을 대폭 늘려 신입생들이 이번 조치와 관련하여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도록 약속하겠다”라고 밝혔다. 또한 재학생 장학금 지원과 교수충원률도 대폭 확충할 것임을 밝혔다.

원광대학교도 이번 정부 발표에 대해 “퇴출될 대학은 퇴출되는 것이 맞다”면서도 평가지표가 다각화 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원광대 관계자는 “우리 대학은 2009년부터 등록금을 동결하며 정부의 등록금 인상률 3%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지켰다”며 “이번 발표는 지나친 부분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 관계자는 “등록금 대출을 제한 받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전에 실시했던 ‘대여장학금’ 제도를 부활해 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정부 발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는 결국 수도권 대학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평가로 지방대의 경우 기본적으로 불리한 점이 있다”며 “수도권 독식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정부 발표에 반발이 특히 심한 곳은 의과대를 가진 대학들이다. 이들은 의과대 취업률이 평가지표에서 빠지면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관동대 관계자는 “의학계열이 평가대상에 빠진 것은 아쉽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에 대해 건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원광대학교 관계자도 “우리학교는 의학계열 대학의 학생만 해도 약대를 빼고도 1076명이 된다. 전국에서 가장 많다. 이런 의대가 취업률에서 빠지다보니 손해를 입은 건 사실”이라며 “지난 2008년 이후로 이에 대해 수차례 건의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관동대 관계자와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잘하고 있나?

재정지원 제한 대학에 선정된 대부분의 대학이 나름대로 불만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정부는 “원칙을 지켜 평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2월에 이번 평가에 대한 공문을 보냈다. 이의가 있는 대학은 이의서를 제출하라고 했으나 제출된 이의서는 하나도 없었다”며 대학들이 뒤늦게 유감을 표명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돌렸다.

다른 관계자는 “의대가 취업률 평가 대상에서 빠지게 된 것은 상대적으로 의대가 있는 대학이 전체 대비 적은 수이기 때문”이라며 “취업률이 90% 이상인 의대를 포함할 경우 의대가 없는 대학과의 형평성에서 어긋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은 예술대학을 빼달라고 요청했던 대학들도 있지만 대학들의 얘기를 모두 들어주면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는 정해놓은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대학구조조정 이대로 지속… 수도권 대학만 유리

하지만 이번 발표가 공정하게 진행되었느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몇몇 의문점이 남는다.

의대계열와 예술계열을 취업률 산정에 포함하느냐 빼느냐는 전적으로 교육부가 정할 수 있다. 정부 정책이 일부 대학에 더 많은 혜택이 간다면 형평성에서 어긋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 밑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번 재정지원 제한 대학들을 자세히 살펴봤을 때 수도권에 위치한 대학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수도권이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대규모의 대학이 위치하기 쉽지 않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방대학에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부가 대학역량 강화사업을 통해 대학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칫 지방대학을 고사시키는 정책으로 흐를 경우 지방에 대한 차별로 인식될 수도 있다. 이는 지방균형발전을 기조로 삼고 있는 정부의 의지와도 배치돼 향후 폭발력이 높은 이슈로 떠오를 가망성도 있다.

1990년 241개였던 대학의 수가 2010년 347개로 늘어난 것에는 정부가 대학설립을 너무 쉽게 인가해 주었기 때문이라는 문제도 안고 있다. 학생수도 142만 명에서 332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런 사이 정부에서는 대학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가 등록금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부랴부랴 정책을 마련했다는 이미지를 지우기 어렵다.

거기에 이런 대학구조조정을 통해 대학등록금을 얼마나 인하할 수 있는지도 아직까지는 예상의 단계일 뿐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가 없다.

정부가 대학등록금을 내년에 평균 15% 인하하고, 2014년에는 현재 수준에서 30% 이상 낮추려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지방에 위치한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게 될 경우 정부 정책에 반감이 높아질 가망성을 결코 배제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번 결과 발표로 몇몇 대학에서 반발할 수 있다는 것은 알 고 있다”며 “내년에는 유관기관과 협의하여 문제점을 추가로 보완해 좀 더 충실한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학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경쟁력이 미약하거나 내부 비리에 연루된 대학들은 가차 없이 폐쇄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그 대학에 재학하거나 입학을 앞둔 학생들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또 다른 대학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정부의 향후 정책에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육계 종사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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