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소식을 지난호 일요서울신문은 「대한민국 거목, 민주화 큰 별지다」라는 특보로 내보냈다. 김 전 대통령의 이 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업적은 큰 별이 졌다라는 표현만으로 부족할 만큼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을 지키고 굳건히 한 거목(巨木)이란 말에 토 달 일이 전혀 없을게다.

그가 여느 대통령들처럼 뒷돈을 밝혔거나 정치를 이유로 부정축재를 해온 정치인이었다면 언감생심 ‘금융실명제’라는 혁명적 결단을 도저히 못 할일이었다. 별로 자금력이 없는 정치인이 중진 정치인으로, 또 계보정치의 수장으로 성장하면서 오랜 세월을 벌이 한 푼 못하는 재야인사로 지내면서도 대 저택을 마련하고 풍요한 생활을 영위했던 나라지도자가 없지 않았다.

이런 지도자가 정권을 틀어쥐었다고 해서 함부로 할 수 있는 금융실명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아는 터다. 그뿐인가, 자기 약점이 태산 같은 국가 지도자가 감히 군부정권의 호위군으로 뭉쳐져 있던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전광석화처럼 깨부수고 직전의 두 전직 대통령을 나란히 죄수복을 입혀 법정에 세울 수가 있었겠는가.

그가 아니었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적인 대 사건이었다. 그 덕에 후임 대통령들이 온갖 부패와 부정에 휘말리고 민심이 바닥까지 내려앉아도 군부가 움직인다거나 군사쿠데타 설이 회자되는 일은 확실히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지울 수 없는 실책이 IMF 국가 부도 사태였다. 이 대목마저 내밀하게 따져보면 이 중대사안이 과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무능 때문이었다고만 할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또 한 가지, 소위 한보사건과 관련한 차남 현철 씨 사건에서도 규모면에서 따져보면 그 뒤 대통령 친족 비리와 비교해 별것 아니었다는 감회가 생긴다. 더욱이 현철 씨는 현직 대통령인 아버지의 손에 의해 구속돼 실형을 산 유일한 사례로 현대사에 기록됐다. 이 정도면 정치적 사면을 떠나 상대적으로 봐서 충분한 죗값을 치루었고 전폭의 국민적 아량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냉정한 눈으로 다시 한 번 바라봐야 한다. 지금 대개의 좌파진영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 초대 정부를 친일과 국토 분단의 원흉처럼 몰고 있다. ‘우남 이승만’하면 누구보다 일본이라면 치를 떤 민주주의를 신봉한 민족주의자였다. 이런 분이 작심하고 친일했던 민족반역자들을 옹호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을 일이다. 또한 남북 분단을 원하면서까지 정권욕에 사로잡힌 대통령 병 환자도 아니었다.

이 땅이 붉은 무리들에게 유린당하지 않기 위해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건국을 선포했다. 그러고 나니 요소요소에 사람이 필요했고, 그 필요한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가 없이 일제의 교육을 받고 그들 통치하에서 행정경험을 쌓은 사람들뿐이었다. 이런 사람들 모두를 일제치하에서 일했다고 다 배제시키면 도대체 국가 조직을 어떻게 이끌어가자는 건가.

당시 소학교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행정경험이나 군대 경험도 없고, 수사 및 법집행 경험도 없는, 그야말로 일제치하에서 그들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소작 농민들을 비롯한 하부층의 무학들뿐이었던 게 진실이다. 그러니 어찌 하겠는가. 악질 친일 앞잡이들은 처단하되 나머지 지식인들 중에서 성향을 구별해 쓸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이를 무시하고 말년의 자유당 횡포만을 부각시키고 싸잡아 친일로 초대건국 정부를 매도하는 저의를 우리 학생들이 꼭 주목해야 한다. 정의롭고 진실 된 역사는 선동으로 무너뜨릴 수 없다. 역사는 정의를 자양분으로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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