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가는 형상이 참으로 가관이다. 도대체 ‘한상균’이란 인물이 뭐 길래 이렇게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온 언론의 촉각을 곤두서게 하는지 정말 어이없는 풍경이 연일 계속됐다.
민주사회의 폭력시위 주도자로 수배된 한 씨를 한때 이 나라 진보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백기완 옹이 노구를 이끌고 조계사로 찾아가 ‘절간’은 밥 얻어먹고 쉬는 곳이라고 부추기는 모습에서는 한심한 감회를 억제할 수 없었다. 민주국가의 종교의 자유는 인정되지만 종교시설이 성역이란 말은 들어 본적 없다. 더욱이 종교타락이 극에 달한 오늘에 이르러 말이다.
지금이 무슨 압제받던 군사 독재시절도 아니고 문민정부 20년이 넘은 시점이다. 그런데 역사의 시계는 마치 거꾸로 돌아서 꼭 80년대로 돌아간 듯하다. 10년 좌파 정권에서 활개 치던 종북세력이 보수정권에 의해 설자리를 잃어가기 시작한지 올해로 만 7년 지났다. 이 위기감을 이용한 한상균 씨의 교활한 선동과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비겁함이나 비열함은 역겨움의 극치였다.
그런 사람이 지금 좌파 진영의 영웅이 돼있는 이 기막힌 현실에 경찰의 무기력함을 탓하는 여론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10년간의 좌파 정권이 쫓겨날 때의 2007년 12월 대선분위기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나무막대기를 대통령후보로 꽂아 놓아도 무조건 당선 될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이 좌파 정권에 몸서리를 쳤다.
유, 무능을 따질 것 없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압도적인 승리가 이미 담보된 선거였다. 선거 후 좌파진영의 상실감은 절정에 달했다. 그런 판에 아주 절묘하게 반전의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바로 그 지긋지긋했던 ‘광우병’ 파동이다. 청와대 앞까지 점거한 이들 폭력시위에 대해 훗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뛰는 가슴을 안고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 행렬을 불안하게 바라봤었다”고 회고했다.
IMF 국가부도 사태를 부른 김영삼 정부 말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무능이 민주화 시대에 불법폭력시위의 ‘대부’ 노릇을 했다고 해서 결코 과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 다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자리도 채 잡기 전에 이번에는 또 ‘세월호’사고가 터졌다. 이 문제는 더 조사하고 말고 할 것 없는 대형 사고였을 뿐 어떤 의혹을 살만한 이면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돈벌이에 눈먼 선박회사가 마치 사람을 짐짝 취급한 정원초과에 이를 눈감아준 해양경찰이 사고의 근본이었고, 또 사고 후속 조처를 하지 않아 아까운 어린 생명들을 고혼으로 만든 건 선장 이하 지휘부 선원들의 무책임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면서도 급물살이 무서워 구조 엄두를 못낸 해경 구조대의 직무를 유기한 책임 외에 더 무슨 따지고 조사할 일이 있다는 건가. 숱한 괴소문은 모두 유언비어로 밝혀지지 않았는가.
결론적으로 폭력시위꾼들에겐 법(法)이란 것이 지켜야 하는 것으로 인식 되지 않고 있다.
한 씨가 조계사 안에서 뱉은 말이 “국가권력의 폭력에 맞서는 모든 행위는 정당방위”라고 했다. 경찰 진압에 어떤 폭력행위든 불사하겠다는 선전포고다.
쇠파이프로 경찰차를 때려 부수고, 밧줄과 사다리 등으로 경찰을 공격할 때 뒤집어 쓴 ‘복면 착용’도 자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행위(?)에는 정당방위라는 이름으로 경찰을 때려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사회가 대체 언제까지 전국 근로자의 3%에 불과한 ‘민노총’에 끌려 다녀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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