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세입자들 평균 월세 800달러는 “부담”
유럽 일각, 겨울 난방비로만 소득 50% 지출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인간생활의 기본요소로 흔히 의식주(衣食住) 세 가지를 드는데 지구촌에는 하루 2달러(약2400원) 미만 생활비로 살아가는 빈민도 수십 억 명이어서 인간생존의 절대 요건인 ‘식(食)’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가 늘 TV에서 접하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의 식량난에서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들은 대부분 ‘식(食)’에서 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비교적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 의식주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주(住)’, 즉 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국민들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부류는 서민(庶民)이다. 이들 서민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집 문제에 골몰하고 있다. 소득에 비해 주거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겨울에는 난방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주거비 부담이 가중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성인 남녀 80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12월 15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43.6%가 주거비 부담 때문에 소비를 줄였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30·40대, 저소득자, 세입자의 소비 위축 정도가 다른 연령대, 고소득자, 자가 거주자보다 더 컸다.

美 4300만 가구가 셋집

미국에서도 많은 가계가 주거비 부담 때문에 소비를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대학 주택연구합동센터가 지난 12월 중순 공개한 ‘미국 임대주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주택 세입자의 절반 이상이 40대 이상 중·노년층이며 전체 세입자 가운데 이 연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보고서는 “2015년 중반 4300만 가정·개인이 셋집에 사는 것으로 파악되었다”며 “이 같은 수치는 2005년에 비해 거의 900만 건 늘어난 것으로 10년 단위 증가로는 최대치”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20대 가구들이 전체 세입자 가운데 단일 연령대로서 최대 점유율을 보인다면, 40대 이상 가구들은 이제 모든 세입자들 중에서 다수가 됐다”고 분석했다. 세입자의 주류가 중·노년층이라는 것이다. 이들 중·노년층 인구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10년 사이 집을 날리고 세입자로 전락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도 집을 빌려 월세로 사는 것보다 은행융자를 받아 매월 원리금을 갚는 것이 월세보다 싸게 먹힌다. 하지만 주택 대출 상환금이 실제로 월세보다 더 싸게 먹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집 사기를 꺼린다. 주택 조사 사이트 ‘트룰리아’는 주택 구매가 월세보다 전국적으로 36% 더 싸게 먹히며, 미국 100대 도시 모두에서 구매가 임차보다 더 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계속 월세를 고집하는 것일까? 그것은 수많은 세입자들이 매월 높은 월세를 지출하느라 주택 구입에 필수적인 계약금을 저축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아파트 월세의 중간값은 802달러(약95만원)였다. 보고서는 “세입자 5명 가운데 1명은 연소득이 1만5000달러 미만인데, 이런 사람들은 월세가 400달러 미만이라야 감당할 수 있다. 2003~2013년 이런 월세 수준의 아파트 신축은 고작 5% 늘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미국 전체 세입자의 절반(49.3%)이 소득 가운데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했다. 25% 이상은 소득의 절반 이상을 집에 쏟았다.

유럽의 사정은 어떤가? 유럽에서도 높은 주택 월세와 난방비 등 소득 대비 과도한 주거비 부담 때문에 서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촉발된 유럽 주택위기가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어 주거비가 상승 중인데다 장성했으면서도 분가할 형편이 안 돼 부모 집에 얹혀사는 18~34살 젊은이, 즉 이른바 ‘캥거루족’의 비율이 치솟으면서 유럽인의 주거환경이 전반적으로 위기에 처했다고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펼치는 세계적인 비영리기구 ‘해비타트’가 최신 연구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캥거루족’ 늘어난 유럽

유럽 주민 가운데 10% 이상이 가계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중·동부 유럽의 경우, 겨울철 난방비로만 가계 소득의 30~50%가 나가는 실정이다. 이처럼 갈수록 높아가는 주거비 때문에 사회 전체의 빈곤수준이 올라가며 심지어 집을 날리고 거리로 나앉는 사람도 늘고 있다.

가뜩이나 비좁은 집을 계속 비좁게 만드는 주된 원인인 캥거루족 비율은 현재 최고점에 이르렀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74%인 슬로베니아이며, 이탈리아(66%)와 포르투갈(55%)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런데도 주택 신축은 근년 들어 70~90% 급감했고, 공공주택은 수요의 10%도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턱없이 적다.
이처럼 심각한 주택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집을 제공할 방안을 유럽 정책 당국자들이 긴급하게 개발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촉구한다. 해비타트의 유럽·중동·아프리카 책임자 그렉 포스터는 “유럽은, 계층이나 소득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쾌적한 주거를 누리도록 주택을 개발하고 제공하는 더 나은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면서 “유럽 도시들을 계속해서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유럽 중·저소득 계층이 직면한 위협과 동향을 분석하고 그에 맞춰 해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유럽에는 주거비 때문에 허리가 휘는 사람들이 실로 엄청나게 많다. 해비타트에 따르면 저소득(국민평균소득의 60% 미만) 가계의 경우 가처분 소득의 최대 40%를 집에 지출하고 있으며 이런 사정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한 가계의 경제적 고통은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으며 가난한 가정일수록 당연히 그 고통은 더 크다.

유럽 전역에서 근년 들어 유행처럼 시행된 주택 사유화, 즉 공영주택의 민간불하는 ‘하우스푸어’의 양산으로 이어졌다. 한국과 달리 유럽판 하우스푸어는 높은 은행이자 부담 때문에 허덕이는 집주인이 아니라 주택 관리에 들어가는 돈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 주택 소유자를 뜻한다. 이들 하우스푸어가 소유한 주택은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데, 이런 주택은 결국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버거운 공공의 부담이 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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