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은 없었다.’법무부가 지난 5월 27일 단행한 검사장급 인사는 참여정부 첫 검찰인사와 달리 서열파괴 등 예상됐던 깜짝 놀란만한 인사는 없었다. 대신 법무부 출신들이 주요요직에 기용되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시 동기인 17회출신들이 전면에 포진된 것이 이번 인사의 특징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인사에 대해 검찰내부에서는 대체로 ‘무난한 인사’라는 평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가 발표되기까지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두 사람이 3차례나 따로 만나 이번 인사를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번 인사가 회동결과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 강 장관과 송 총장은 5월 27일 검찰의 검사장급 인사안을 들고 청와대에 함께 동행했다. 인사 재가를 받기 위해 장관과 총장이 함께 청와대에 들어간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주목을 받았다. 특히 두 사람은 이번 인사를 앞두고 3차례나 회동을 갖고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며 충분한 논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통해 그 동안의 갈등 봉합?

이같은 두 사람의 화합 분위기는 사안마다 갈등을 빚었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정치권에 불고 있는 ‘상생’의 바람이 두 사람에게도 불어온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실제 강 장관과 송 총장은 그 간 여러 사안을 두고 파열음을 냈다. 한총련 수배해제에 대한 이견, 촛불집회 체포영장 사전보고 누락 문제, 법무부 간부 징계문제, 검찰 개혁방안을 둘러싼 갈등 등 두 사람의 마찰은 법무부와 검찰이 대립한 양상으로 비쳐졌다. 지난해 9월 과천의 한 보신탕집 회동에서 강 장관이 송 총장과 팔짱을 끼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소 해소된 듯 보였다. 그러나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의 처리 과정에서 다시 재현됐다.

검찰이 송 교수가 입국하면 구속기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강 장관은 사견을 전제로 송 교수 처벌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지난 2월 단행된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서도 송 총장이 강 장관의 인사방침을 누르고 자신의 인사 구상을 관철시켰다는 얘기가 나돌며 갈등설은 또다시 터져 나왔다. 이 때문에 5월 27일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를 앞두고도 갈등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파격인사 대신 대체로 서열을 중시한 무난한 인사로 마무리 됐다. 이는 강 장관과 송 총장의 3차례 사전 회동과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통해 긴밀하게 협의한 결과라는 관측이다. 당초 파격인사가 예고됐지만 강 장관이 송 총장과의 협의과정에서 상당부분 검찰측 의견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강 장관과 송 총장이 이번 인사를 통해 그 동안의 쌓였던 갈등을 봉합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누구 입김 셌나

그러나 이번 인사안을 바라보는 해석은 엇갈리고 있다. 강 장관의 핵심참모 출신 법무부 간부들이 검찰 요직에 배치되면서 전반적으로 강 장관의 우세승으로 분석하는 경향이 많다. 실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검찰의 꽃’인 서울중앙지검장은 강 장관의 핵심 참모중 한 명인 이종백 법무부 검찰국장이 임명됐다. 송 총장은 마지막까지 불법대선자금수사를 지휘해 온 안대희 대검중수부장을 밀었지만, 강 장관의 의중이 더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 사시동기인 이종백(사시17회)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사시 15∼16회 선배들이 서울의 4지검장에 포진하고 있어 나름의 서열파괴형 인사라는 평가다.

빅4중 한 자리인 대검 중수부장 자리도 송 총장은 문영호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는 강 장관의 참모인 박상길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이 임명됐다. 또 강 장관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훈규 서울남부지검장이 대검 형사부장으로 영전됐고, 참여정부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근무했던 문성우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검사장으로 승진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영전됐다. 반면 ‘탄핵 반대 촛불시위’주동자 영장청구와 관련 법무부와 갈등을 빚었던 홍경식 대검 공안부장은 의정부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송두율 교수를 구속한 박만 서울중앙지검 1차장도 검사장 승진이 유력했지만 탈락했다. 하지만 송 총장의 입김이 더 많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이는 이번 인사가 강 장관 취임초기의 ‘서열파괴’식 파격인사가 없었고 대체적으로 검찰 내부의 서열을 존중한 인사였다는 점을 들고 있다.

실제 법무부는 5월 27일 인사에 대해 “이번 인사는 검사 개개인에 대한 검찰 내외의 신망과 평판, 능력과 자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한편 기존 서열을 존중해 검찰 조직의 안정을 도모한 것이 특징이다”며 “전문성과 출신지별 지역 안배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내부에선 주요 요직에 법무부 출신이 많이 기용됐지만, 평소 능력위주의 인사를 강조했던 송 총장의 의견도 상당부분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 것. 그러나 6월 7일로 예정된 검찰의 후속 부장검사급 인사도 검사장급 인사처럼 무난하다는 평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강 장관과 송 총장이 사전에 만나 인사내용을 조율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강 장관의 의중이 검사장급 인사보다는 훨씬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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