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월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2월 25일 “통일 대박”의 구체적 실행을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킬 것이라고 공표했고 서둘러 개설했다. 정부는 통일에 대비해 ‘통일 헌법’ 마련에도 착수했다. 그후 “통일 대박”은 시대적 유행어로 퍼져갔다.

또한 박 대통령은 같은 해 3월28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대북 경제지원을 골자로 한 ‘드레스덴 통일구상’을 발표했다. 북한의 “교통·통신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고…나진·하산 물류사업 등 남·북·러 협력 사업과 신의주를 중심으로 남·북·중 협력 사업을 추진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이 “원점 타격” 협박한다며 민간인들의 대북 전단 살포도 중단시켰다.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선언하며 저와 같이 후속 조치들을 펼쳐가자 우리 국민들은 머지않아 남북경제공동체가 형성되고 통일이 곧 다가오는 것 같은 통일 환상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통일 대박”을 선언한지 2년 만인 지난 1월22일 신년 외교·통일·국방 업무보고 자리에서 “통일 대박” 대신 대북 “압박”으로 돌아섰다. 그는 “지금은 남북대화보다 대북제재를 통한 압박의 타이밍(시기)”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통일 대박”이나 북한의 교통·통신 인프라 구축에 관해선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대북 제재 “압박”을 역설하면서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언제든 국민의 신변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사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예측 못할 도발에 직면할 경우 개성공단을 폐쇄할 것임을 함축한 말이었다.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이 2년 만에 “대북 압박”으로 돌아선 것이다.

“통일 대박”이 “압박”으로 바뀌게 된 배경은 복잡하지 않다. 박 대통령이 북한의 기습적인 1월 6일 4차 핵실험에 당황하고 분노한 데 기인한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통일 대박” 분위기를 조성하며 북한에 유연한 자세로 임하면, 김정은 로동당 제1비서도 긍정적으로 호응해오리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김정은은 호혜적 반응 대신 4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이 2년간 공들여온 “통일 대박”은 “쪽박”으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통일은 김정은이 박 대통령과 손을 마주 잡고 나서야만 추진될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통일 대박”을 남한에 의한 북한 흡수통일로 간주, 호응 대신 적대시 한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핵무기를 소형화하고 미사일을 개발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다음 결정적 시기에 대한민국을 적화하는 데 있을 따름이다.

남북통일이 김정은의 적화야욕으로 꽉 막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통일 대박” 기대감을 띄우며 국민들에게 통일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통일 대박”을 말할 “타이밍”이 전혀 아니었다. 너무 성급했다. 그래서 나는 2년 전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공언하였을 때 위험스런 발상이라고 경고했다. ‘일요서울’ 2014년 1월13일자 “통일은 대박이지만 서둘면 쪽박찬다” 제하의 칼럼을 통해 “통일 대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통일 대박” 기대감 확산은 국민들을 “통일 지상주의”나 “환상”으로 빠져들게 함으로써 “대북 경계태세를 해체”시켜 “대박 대신 쪽박을 찰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통일보다는 “대북 경계태세부터 가다듬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금 절실한 것은 통일 환상에 들뜨게 하는 “통일 대박”이 아니다. 북핵으로부터 대한민국 5000만의 생명을 지킬 생존 자구책이다.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 공언은 신중치 못했고 성급했다. 그의 “통일 대박”여론 몰이가 2년으로 주춤해진 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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