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어두운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현실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얄팍한 ‘감정적 텃세’에 불과하다. 극중 인물들은 음습하고 어두운 맨델리저택이 빛을 찾기까지 한번도 극에 실존인물로 나타나지 않았던 레베카라는 인물에게 순수한 감정을 저당잡힌다. 끝내 저택이 타들어가면서 불타는 순간, 맨델리는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뮤지컬 ‘레베카’는 전 부인인 레베카의 죽음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막심 드 윈터와 죽은 레베카에게 집착하며 맨덜리 저택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집사 댄버스 부인. 사랑하는 막심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댄버스 부인과 맞서는 맨덜리의 안주인‘나’를 중심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션물 답게 깊은 감정의 변화를 절묘하게 표현해 내기 위한 강렬한 선율의 넘버들이 인상적이다. 극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무대장치와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이 조화된 앙상블로 시너지를 이뤄내고 있다.

뮤지컬 ‘레베카’는 영국의 대표적 여성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의 1938년 작으로 지난 70여 년간 단 한 번도 절판된 적 없는 베스트셀러 ‘레베카’에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인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감독의 영화 ‘레베카(Rebecca, 1940)’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감독은‘엘리자벳’, ‘모차르트!’ 등으로 뮤지컬의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른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와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다.

등장 인물의 미묘한 감정 변화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에 연기력과 가창력이 출중한 배우의 캐스팅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이다. 특히나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 댄버스 부인의 카리스마를 그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배우의 캐스팅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저음부터 고음의 영역까지 섭렵할 수 있어야 하고 음색에 맞는 몸동작은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되는 인물이어야 한다. 내면에서 우려나오는 특유의 에너지로 아우라를 만들어 내기에 부족함없어야 했다. 그리움과 승리, 위협과 배신의 레베카 넘버를 소화해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배우여야 한다. 이에 신영숙, 간신영화에서 장녹수역을 맡았던 차지연이 캐스팅됐다.

어두운 과거로 인한 트라우마를 순수한 ‘나(I)’와의 사랑으로 극복해 나가는 막심 역에는 민영기, 류정한, 엄기준, 송창의다. 묵직한 존재감으로 뮤지컬계의 터주대감 자리를 지켜온 배우들이다. 관객들의 작은 숨소리와도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다는 뮤지컬만의 강점을 최대로 누릴 수있는 이유는 관객을 끝까지 배려하는 명불허전 배우들의 '완숙함'때문이다.

갈등해소단계 따라 변하는 엠블럼 색

무대 장치를 자세히 보면 갈등의 해소단계에 따라 천장에 매달려 있는 레베카엠블럼색이 세단계로 변한다. 음산하고 어두운 과거의 집착해 있을때는 검정보다 더 깊은 상처를 지닌 색, 보라다. 모든 것을 태우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단계에서는 붉은 색으로 변한다.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정서순화단계에서는 어떤 색도 띠지 않는다. 색깔이 없는 레베카는 갈등해소를 의미한다. 레베카의 넘버가 반복되는 듯해도 의미가 전혀 다르듯이 어두운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난 레베카는 포용의 색으로 변하면서 갈등의 벽을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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