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오죽하면 목숨 걸고 왔겠나”동정
“우리가 낸 세금 먹는 하마” 경계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독일이 지난 한 해 동안에만 난민 110만 명을 받아들인 것을 보는 한국인들은 독일 정부와 독일 시민의 관대함에 놀라게 된다. 난민의 주종은 시리아·이라크·아프가니스탄 출신이다. 이들은 시리아 이웃나라인 요르단, 레바논, 터키에 일단 집결한다. 이들 나라에 모인 난민 중 유럽행을 결행할 정도로 정신력과 자금력이 있는 사람들은 일단 그리스 행 선박에 오른다. 선박이라고 해야 고무보트가 대부분이다. 지중해에서 뒤집히면 수많은 희생자가 난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시리아 지원을 위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세계 지도자들은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발생한 난민들에게 학교, 임시 거처, 일자리를 지원할 기금 100억 달러 이상을 내놓기로 약정했다.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데이비드 카메론 영국 총리는 이 돈이 “목숨을 살리고 희망을 주며 사람들에게 미래의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 참석한 지도자들은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킬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희박해졌음을 인정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어렵사리 유엔 중재로 시작됐던 평화회담은 참석자들 간의 이견으로 일시 중단되었으며, 전투는 격렬해지고 있고, 러시아와 서방은 불화를 빚고 있으며, 시리아 주민 수백 만 명은 폭격과 기아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독일 도착 난민 귀환 속출

영국 의회 건물 부근의 콘퍼런스센터에서 삼엄한 경비 아래 열린 하루짜리 이번 회의는 요르단·레바논·터키 등 인근국가들에 피신한 시리아 난민 460만 명을 돕는 노력에 새로운 긴급성을 부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들 말고도 추가 600만 명은 시리아 내에서 삶터를 잃은 상태이며 25만 명은 사망했다. 국제사회의 기부에 대한 이전의 호소는 기부 목표치 달성에 이르지 못했다. 5년에 걸친 전쟁으로 절박해진 시리아 난민 수십 만 명은 필사적으로 유럽에 몰려들었다. 4일 나온 기부 약정은 중동지역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 난민을 위해 학교, 일자리 등을 지원하고, 현재 시리아 난민을 임시 수용하느라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는 중동 국가들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시리아 난민의 유럽행을 둔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 유럽 일각에서 “유럽으로 건너오는 난민이 자기가 정착할 국가를 고르게 할 것이 아니라 유럽 각국이 자국이 받아들일 난민을 고르게 하라”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난민이 가장 선호하는 유럽국인 독일에 도착한 난민 가운데 현지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본국으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하고 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살았던 아메르(30)는 지난해 10월 가진 것을 모두 팔아 돈을 챙겨 가족과 함께 안전한 삶을 찾아 독일로 건너왔다. 넉 달이 흐른 지금, 그는 내전이 한창인 고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막상 독일에 입국하고 보니 상황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독일 정부로부터 작은 집이라도 한 채 얻고 장사 밑천이라도 얼마간 도움 받을 줄 알았는데 정작 그가 거처로 제공 받은 것은 옛 관공서 건물을 개조한 임시 피난처였다. 아메르는 다시 여행 가방을 꾸리고 있다. 그는 독일을 천국으로 알고 왔다면서 자신의 이민 결정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난민이 한꺼번에 많이 몰린 까닭에 독일 공무원들은 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치고 치료하는 일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근무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세금 먹는 하마’인 난민의 급증에 대해 갈수록 세찬 불만을 쏟아내는 독일 국민을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는 중이다.

독일에 도착하는 난민 가운데 많은 사람은 본국을 출발하기 전 독일에 대해 품었던 기대와 막상 도착해서 확인한 현실이 일치하지 않음을 알고는 실망한다. 그들은 ▲ 난민 수당이 얼마 되지 않으며 ▲ 일자리 전망이 어둡고 ▲ 당국에서 난민을 엄격하게 다루며 ▲ 독일 음식맛이 밋밋하고 ▲ 독일인의 성 개방 풍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 도착한 난민을 중심으로 귀환을 꾀하는 사람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 쪽에서는 계속 난민이 들이닥치고 있다. 독일에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은 열악한 난민 수용소를 벗어나 번듯한 집으로 옮기며 본국의 가족을 불러오고 독일어를 배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일부는 독일 정착을 포기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독일을 떠나 귀향길에 오르는 난민에 관한 공식 통계는 없다. 그렇지만 독일정부가 정부간(政府間) 기구인 국제이주기구(IOM)와 공동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알 수 있는, 독일을 떠나는 난민에 대한 통계는 있다. IOM은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갈 여비가 없는 사람들에게 비용을 지원하는 기구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을 자발적으로 떠난 사람은 2015년 2만7220명으로 전년의 1만3574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독일에서 난민 지위를 얻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발칸반도 출신이지만, 이라크 출신도 같은 기간 4배로 늘어 724명에 달했다.

“아이가 아파서 못 기다려”

새 여권을 신청하러 독일 주재 시리아 대사관을 방문한 젊은 시리아 여성 림은 본국에 남겨둔 4살배기 아들을 얼른 데려올 요량으로 자신이 먼저 지난해 가을 혼자 독일에 왔다. 그런데 막상 독일에 오고 보니 아들을 데려오는 데에 몇 달 또는 심지어 1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가 아파서 오래 기다릴 수 없다”고 WSJ에 말했다. 문화충격 때문에 도저히 독일에 정착할 수 없다는 난민도 있다. 시리아 동부 데이르 에조우르 출신의 51살 치과의사 압둘라 알소안은 당뇨병 복합증상을 치료 받으려 유엔의 도움을 받아 10개월 전 독일에 입국했다. 현재 그는 시리아에 남겨둔 자녀들에게 돌아가려고 새 여권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돌아가기로 한 것은 길거리에서 10대들이 키스하는 것을 보고 독일이 딸을 키우기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이나 독일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의 생활방식이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활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느낀 바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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