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8년초 북한이 감행한 ‘1·21 청와대 습격 사건’과 ‘1·23 미국 푸에블로호(USS Pueblo, AGER-2) 나포 사건’은 위기 조장을 통한 내치(內治) 강화 목적도 있었지만 60년대말 갈등상태이던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수단으로 추진했을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외교문서가 공개된 것은 2012년 4월이었다.


미 우드로윌슨센터 ‘북한국제문서연구사업’(NKIDP) 프로젝트팀이 발굴해 밝힌 옛 공산권국가 외교 전문에 따르면 북한이 당시 약화된 북중 동맹을 복원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군사적 모험주의를 추진한 정황을 당시 평양 주재 외교관들의 보고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루마니아 외교부 외교 전문에 따르면 푸에블로 나포 사건 후 두 달 가까이 왕펑 주(駐)북한 중국 대리대사는 주 북한 루마니아 대사관 외교관과의 면담에서 그 이전까지 북한에 대해 가졌던 비판적 태도에서 확연히 달라진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N. 포파 주 북한 루마니아 대사는 전문에서 “이전까지 북한 노동당과 정부 지도자들, 북한의 대내외 정책에 대해 사용하던 거친 표현과는 대조적으로 이날 면담에서 왕펑 대사가 태도를 완전히 바꾼 점은 주목할 만했다”며 “특히 북한의 강경 노선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자가 돼 있었다”고 보고했다.


당시 중국의 문화혁명 추진과 중국-소련 분쟁 과정에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상당히 악화됐던 상태로, 1967년말 양국 동맹관계는 매우 취약한 상태였던 점에 비춰볼 때 청와대 습격과 푸에블로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는 것이다.


포파 대사는 “왕펑 대사는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뿐 아니라 한반도에까지 전선을 확장하려 하기 때문에 북한의 전쟁 대비태세를 환영한다고 밝혔고, 특히 그는 한반도가 무한정 분단된 상태로 있을 수 없는 만큼 전쟁은 불가피하며, 북한에는 정당한 전쟁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왕펑 대사는 미국이 1~2주일안으로 전쟁을 개시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밝혔다”면서 “중국은 전쟁이 임박해 있다는 북한 동지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으며, 북한을 전면적으로 지지할 것이라는 점을 거듭 밝혔다고 강조했다”고 보고했다.


포파 대사는 왕펑 대사와의 면담을 토대로 청와대 습격과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으로 “중국과 북한의 양자관계는 복원됐으며, 과거 다툼은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외교문서들 중에는 청와대 습격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김일성 주석에게 양국 관계를 복원하자는 서한을 보냈다는 평양주재 공산국 외교단의 정보사항도 들어 있다.


포파 대사는 주 북한 헝가리 대사관과의 면담 결과 전문에서 “헝가리 대사관은 저우언라이 총리가 2주일전 김 주석에게 서한을 보냈다는 정보를 확보했으며, 이 서한은 그동안의 갈등을 뒤로하고 양국관계를 정상화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이 서한은 또 저우언라이 총리가 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강조하며 중국은 반미투쟁 등 어떤 상황에서든 북한에 대해 전면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포파 대사는 주 북한 중국대사관측은 저우언라이 총리의 서한 발송 사실 확인 문의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고 추가 보고했다.


신종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12년 4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발굴됐던 외교문서들에 따르면 북한이 1967년 북베트남에 100명의 전투기 조종사들을 파병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지도부는 북한이 베트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지원은 한반도에서 미국에 대항하는 제2전선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고, 만약 북한이 그러한 공격을 감행할 경우 북한에 대한 원조와 지원에 나설 것임을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1967년 무렵 북중간 냉랭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다수 사회주의국 외교관들은 북중관계는 개선될 것으로 보았고, 북한이 ‘남조선 해방’ 투쟁이나 미국에 대항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중국과의 유대를 회복시키는 수단으로 간주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청와대 습격,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당시 상황을 전해주는 루마니아 외교문서 내용은 이들 군사적 모험주의가 중국과의 동맹을 복원하고 더 강화하기 위한 북한의 계획된 노력의 일환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이 분석이 맞다면 북한 지도부는 1968년 1월에 중국의 권고를 따르는 결정을 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 대가로 막대한 중국의 지원과 원조를 받아내려고 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은 1968년 1월 23일 승무원 83명을 태우고 북한 해안에서 40㎞ 떨어진 동해의 공해상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미 해군소속 푸에블로호가 북한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납북된 사건이다.


푸에블로호는 전쟁 중이 아닌 평화 시에 150년 만에 처음으로 나포된 미 군함이었다. 이 사건은 제2의 한국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돌았지만 미국의 외교 노력으로 충돌없이 11개월이 지난뒤 승무원들을 돌려받았다.

북한 “美, 푸에블로호 사건서 교훈 찾아야”…
대미 비난


한편, 북한은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48주년을 맞아 미국은 이 사건에서 교훈을 찾으라며 대미 비난 공세에 열을 올렸다.


북한의 대외선전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월 23일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발생 48주년을 언급하면서 “우리 공화국은 수소탄 시험에서 완전 성공함으로써 핵 강국의 전렬(전열)에 당당히 올라서게 되였으며 미제가 원하는 그 어떤 전쟁 방식에도 다 상대해 줄 그런 힘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미국은 력사(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고집하면서 무분별한 침략 책동에 계속 매달리고 있다”면서 “미국이 우리 공화국을 상대로 무모한 도발을 또다시 걸어온다면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은 침략자들을 항복서에 도장을 찍을 놈도 없이 모조리 최후멸망의 무덤 속에 들여보내 주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1월 22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한반도 긴장 격화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핵 억제력까지 갖춘 선군 조선의 막강한 위력 앞에서 미국은 흘러온 조미(북미) 관계사의 심각한 교훈을 다시금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역시 “미국은 우리와의 대결에서 너무도 많은 대가를 치르고 패배의 수치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였다”면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종국적 파멸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현재 북한은 주민들에게 반미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푸에블로호를 평양 보통강구역 전승기념관의 야외전시장에 전시하고 있다. 

<윤광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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