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보건사회부장관은 올 들어 두 번이나 국민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첫 번째는 그가 지난 1월14일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되었을 때였다. 두 번째로는 더민주당과는 상반되는 ‘수구보수’ 언동을 서슴없이 내뱉었을 때였다.

김 위원장은 지난날 대부분 보수 정권의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국회의원,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등 보수 권력의 핵심으로 중용되었다. 그랬던 그가 보수정권 반대편에 선 좌편향 진보 더민주당의 사령탑으로 들어갔다. 그가 70대 중반에 이르러 노욕(老慾)으로 분별력이 흐려진 건 아닌지 의심케 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더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어 새누리당 대표로 착각하리 만큼 보수적 언동을 쏟아내기 시작, 다시 놀라게 했다. 그는 국립현충원을 찾아 김대중 전 대통령만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묘역도 참배했다. 이·박 묘역을 참배했다가는 야당 의원에 의해 “유대인이 히틀러의 묘소에 참배할 수 있겠느냐”며 면박을 당해야 했던 분위기였다. 이어 김 위원장은 경기도 파주의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언젠가는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동안 더민주당은 “궤멸” 등 험담 대신 북한 비위맞추기와 퍼주기에 앞장섰다.

그밖에도 김 위원장은 더민주당이 “국민의 눈에 수권정당으로 비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치를 운동권 방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했다. 그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과 관련해서도 “개성공단처럼 중요한 안보문제에 대해선 여야가 정쟁으로 접근하는 걸 자제하고 지혜를 함께 모아야 한다.”고 했다. 안보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선 안된다는 지적이었다.

김 위원장의 파격적인 발언들은 야당 측에서 반박했듯이 “수구보수 세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수구보수” 언행은 새누리당을 따라가기 위한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밝힌 대로 더민주당이 “국민의 눈에 수권정당으로” 비쳐지기 위해서다. 운동권 방식을 탈피하고 “중요 안보문제”에선 여당과 협력해야 한다는 개혁적 소신 피력으로 해석된다.

실상 지난 10여년 동안 더민주당이 대통령, 국회,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연패하면서 당내에서도 운동권 정치를 떠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올 1월27일에도 더민주당의 전병헌 최고위원은 “정권교체, 수권 정당의 신뢰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우물 안 운동권 정치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목희 정책위의장은 “운동권은 우리 당의 핵심 지지층”이라고 반박했다.

그동안 더민주당 지도부는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선 친북 “운동권 정치”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절감하면서도 운동권의 반격이 두려워 비굴하게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입을 열었다. “수구보수”를 위한 게 아니라 “우물 안 운동권”의 적폐를 개혁하고 “수권정당”으로 신뢰받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김 위원장은 오래전부터 진보적 “경제 민주화”를 추진코자 했다. 그는 “경제 민주화”를 구현키 위해선 친북 운동권이란 의구심을 씻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은 “경제 민주화”를 사상적으로 의심치 않고 따라갈 수 있다. 공산체제와 대치해 있는 분단국가에서 진보 야당이 수권정당으로 신뢰받기 위해서는 내치에선 진보로 가되 외치에선 안보 우선 쪽에 서야 한다.

정치적 의도야 무엇이든 김 위원장의 친북 운동권 탈피 행보는 기회주의가 지배하는 오늘의 정치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소신 피력으로 평가된다. 김종인은 더민주당 내의 유일한 개혁적 뚝심 정객이다. 그의 개혁적 뚝심이 운동권의 반발에 꺾여 노욕으로 끝날 건지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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