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맞춤’으로 이뤄진 진실같은 허구이야기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다른 문학 장르보다 한국소설은 재미없고 어려우며 올드하다는 평이 있다. 그러한 장르가 가진 편견를 깨고 시대마다 ‘사고의 틀’위에 뿌옇게 쌓여 있는 먼지를 떨어내줬던 한국소설이 존재했다. ‘소나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들’, ‘토지’, ‘태백산맥’과 같은 소설이 그 예다. 시간이 흘러 기발하고 유쾌한 소재의 등장으로 ‘비행운’이나 ‘백의 그림자’, ‘국경시장’,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제목만 들어도 흥미진진한 책들이 발간됐다. ‘퀴르발 남작의 성’ 또한 기존 소설에 대한 편견을 보기 좋게 깨고 한국소설계의 판을 뒤집은 최제훈의 2007년 신작이다. 2016년, 10쇄를 거듭할 정도로 21세기 한국소설의 새 지평을 연 소설이다.

2007년 제7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소설 부문)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장한 저자 최제훈은 경영학과 문예창작과을 복수전공했다. 전통적 서술방식의 틀을 깨고 실험정신을 강조한 구성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구성력이 탄탄하다. 소개하는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이외에도 장편소설 ‘나비잠’ ‘일곱 개의 고양이 눈’등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소설은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뒤집고 한국소설계의 놀라운 상상력을 선보였다. 또한 이야기의 무한 확장성의 최대한을 보여주기 때문에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능청스런 표현에 동감하게 만든다. 오히려 진부하고 명료한 현실이 돌연 낯설게 느껴진다.

 

 

조각 맞춰 나가는 퍼즐식 구성
모든 조각이 모여서 비로소 완성되는 하나의 이야기는 다양한 시·공간에서 6월 9일에 일어나는 12가지 다른 이야기가 ‘액자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33년 6월 9일 K대학교 백정인 강사의 교양과목 강좌로부터 시작해 1932년 미국 작가 미셸 페로와 출판사 편집장, 2004년 일본 영화감독 나카자와 사토시, 2006년 블로거 컬트소녀 등으로 이어나가는 전개방식이다.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을 따라 ‘그림자 박제’를 순으로 ‘괴물을 위한 변명’으로 이어지면서 책장을 덮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보통 일반적인 소설은 흐름속 리듬을 중요시 여기는데 이 책은 ‘형식의 폭’이 가진 깊이를 강조한다. “퀴르발 남작 같은 경우는 이야기 속에서 뛰쳐나와 오래동안 내 정신세계를 맴돌고 있다”는 서평이 나올 정도로 독특한 이야기의 구조와 해석때문에 진귀한 소설체험을 하게 만든다. 원래 이야기와 소설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모여 ‘텅빈 구조’를 이뤄낸 허구지만 형식·공학적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소설 구조가 최제훈 작가의 낯설지만 새로운 전개 방식에 주목하게 만든다. 대학 강사가 대학생에게 강의를 하며 이야기를 하는 형식, 기자가 뉴스 보도를 하거나 시민에게 인터뷰를 하는 형식, 모 포털사이트 블로거가 영화 리뷰를 남기는 형식, 모 대학 인문학부 학생의 리포트 형식 등으로 전개되는 과정이 모여 하나의 큰 이야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퀴르발 남작의 성'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을까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강동호 문학 평론가는 “최제훈의 글쓰기는 여러 가지 장르적 문법들을 서로 접속시키면서 원작자와 등장인물과 해석자의 욕망을 흥미롭게 역추적해 들어간다. 이는 텍스트가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진실과 허구의 분할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아울러 한 편의 이야기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겹의 존재론적 외피를 탐구하는 동시에 해체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평했다.
jakk3645@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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