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제목=0년, 저자 이안 부루마 / 역자 신보영 / 출판사 글항아리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1945년도는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전을 계기로 대한민국 전역이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원년이다. 대한민국정권이 수립돼 유엔으로부터 합법적인 정부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물꼬를 터줬던 해이기도 하지만 한 영토가 남북으로 분리된 비극을 예고한 해이기도 하다.

한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책에서 말하는 0년은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뜻깊었던 1945년도를 의미한다. 전세계적으로 해방과 보복, 처벌의 퍼레이드를 예고한 1945년도는 지적 탐구의 대상이 된해이며 세계적인 변혁을 예고한 운명적인 해다. 전언한 한 장의 사진은 독일로 끌려간 종전 직후 처형을 당할 뻔한 저자의 부친이 찍은 수용소 사진이다. 직계의 휴먼 드라마에서 시작하지만 ‘전후(戰後)의 세계사’로 뻗어나가는 국제적, 공시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종전 뒤에 따라온 해방 콤플렉스, 기아와 보복의 만연, 매국노 처벌, 전범 재판의 불완전한 정의 등과 같은 결정적 주제들을 비범하게 다룬다. 하지만 히틀러의 인종말살 정책과 일본 파시즘의 태평양전쟁, 미국의 승전으로 이어지는 거대 서사에만 머물지 않고 승전국의 행패와 패전국 국민이 겪었던 고난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1945년의 여파를 세세하게 묘사한다. 따라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뭇사람의 눈물겨운 역사학’이라고 한줄 서평할 수 있겠다.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 수용소를 해방시킨 연합군 장교의 발 아래서, 엉덩이를 들 힘조차 없어 그 자리에서 대변을 봐야 했던 유대인 여성과 재생산을 위해 문란한 성행위에 본능적으로 집착했던 유대인 생존자들이 등장한다. 폐허의 도시에서 돈 몇 푼과 담배를 쥐어주는 군인들 대상으로 몸을 팔았던 ‘폐허의 생쥐’ 베를린 성매매 여성들과 일본군 공창의 성노예가 되어버린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다. 세계의 거대 도시들이 폐허가 되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가혹한 보복이 대규모로 가해졌던 모습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체험자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논픽션으로 패전을 당한 독일과 일본만이 아니라 유럽 각지, 미국, 동남아, 중국, 중동 등 세계 각지, 각국과 민족이 겪었던 눈물겨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 이안 부루마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아시아 연구자, 저술가, 저널리스트다. 1951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네덜란드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던 그는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에서 중국 문학과 역사를 전공하고 2003년부터 뉴욕 바드 칼리지의 민주주의·인권·저널리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나라 『중앙일보』 『뉴욕타임스』 등 한국, 미국, 일본 매체에 정치와 문화에 대한 칼럼을 지속적으로 써왔던 그는 미국 외교 전문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사상가’중 한 명이다.

저서로는 『근대일본』 『옥시덴탈리즘』 『신을 길들이다: 세 대륙의 종교와 민주주의』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독일인과 일본인의 전쟁 기억』 『일본의 반사경: 일본 문화의 영웅과 악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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