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원‧엄마‧주부‧CEO 섭렵…유리천장 깼다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2016년에도 여풍이 계속 불 것으로 보인다. 각계 분야에서 여성이 리더 자리에 오르는 일이 계속 늘고 있다. 그동안 여성들의 사회 활동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란 의미의 ‘유리천장’에 가로막히는 일이 많았다. 능력과 자격을 갖춰도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차단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대통령, 여성 CEO, 여성 임원 등 유리천장을 깬 주인공들이 늘어나면서 ‘여풍당당(女風堂堂)’이란 신조어도 나타났다. 이에 [일요서울]은 여성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주인공들을 살펴봤다. 그 여덟 번째 주인공은 김주연 한국P&G 사장이다.

생물학자 꿈꾸다 마케팅 전문가로 전향
국내 시장 장벽 넘을까…공격경영 기대

P&G(프록터앤드갬블)는 글로벌 시장에서 1, 2위를 차지하는 생활용품 기업이다. P&G는 1837년에 설립돼 현재 180개국에서 300개 이상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는 1989년 서통과 합작법인 형태로 진출했으며, 1992년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현재 다우니, 페브리즈, 오랄비, 위스퍼 등 생활·건강용품과 팬틴, 질레트, SK-II 등 뷰티 제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P&G(이하 P&G)를 이끌고 있는 김주연 사장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평사원에서 글로벌 리더의 자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생물학 전공자라는 점이 이목을 집중시킨다.

당초 김 사장은 연세대학교 생물학과 학사, 석사를 거치며 생물학자를 꿈꿨다. 새로운 식량을 개발해 굶어 죽는 아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이에 따라 첫 사회생활도 의약회사인 한독약품에서 시작했다. 다만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마케팅 부서에 배치되면서 김 사장의 삶의 방향은 마케팅 전문가로 바뀌는 전환점을 맞았다.

결혼 후 김 사장은 1995년 신문에 난 P&G 모집 공고를 보고 P&G에 지원했다. 리서치 업무를 시작으로 시장조사부에서 승진을 거듭했고, 둘째를 낳고 복직과 동시에 마케팅 부장에 올랐다.

2011년엔 한국인 가운데 처음으로 P&G 글로벌 브랜드 프랜차이즈 리더에 발탁됐다. 그의 역할은 전 세계에서 팔리는 P&G 헤어케어 제품을 총괄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정은 SK-II, 오랄비, 질레트, 페브리즈, 팬틴, 헤드앤숄더, 위스퍼 등 다양한 브랜드를 두루 거치며 폭넓은 경험을 쌓은 것이 배경이 됐다. 특히 일본 화장품 브랜드 SK-II를 국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평가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SK-II 브랜드를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고, 성장을 견인하는 주역으로 활약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1월 1일부터는 한국P&G 사장으로 선임됐다.

업무 효율성 높인다

이로써 김주연 사장은 P&G 평사원 출신 여자 CEO 계보를 이어가는 두 번째 주자가 됐다.

앞서 P&G는 2012년 평사원 출신인 이수경 사장을 신임 대표로 발령냈다. 이 사장은 1994년 한국 P&G에 사원으로 입사해 최초로 사장까지 오른 첫 여성 CEO로 주목받았다.

P&G 측은 김주연 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발탁하며 “김주연 사장은 P&G의 다양한 브랜드를 두루 거치며 폭넓은 경험을 쌓은 인물”이라며 “한국은 물론 중국, 아시아, 중동, 남미, 동유럽 시장까지 넓게 관장하며 글로벌 시장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감각을 키워왔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P&G의 CEO 교체가 국내 시장의 높은 장벽을 넘기 위한 자구책으로 풀이한다. 유독 국내 시장에서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터줏대감의 높은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P&G는 본사 방침 상 국내에서의 매출을 직접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닐슨데이터에 따른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3, 4위에 이르는 성적을 보이고 있다.

P&G는 지난해 샴푸린스 시장에서 LG생활건강 34.7% 아모레퍼시픽 33.6%, 애경 16.3%에 밀린 8%를 점하는 데 그쳤다.

섬유유연제 부문은 LG생활건강 37.5%, 피죤 25.0%에 이어 20.7%의 점유율로 3위다.

생리대의 경우 유한킴벌리가 50%를 넘는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2위는 LG생활건강과 일본 유니참이 손잡고 만든 LG유니참이 차지했다. P&G는 그 뒤를 이은 3위에 올라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끈 뷰티 브랜드 SK-II도 일본 방사능 사고 이후 한 풀 꺾인 상태다.

김주연 사장의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지만 그의 공격적인 경영행보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동안 P&G의 다양한 브랜드를 섭렵하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는 만큼 국내 시장에서의 자존심을 회복할 것이란 기대다.

이에 부흥하기 위해 김주연 사장은 내부 단속부터 나섰다.

최근 그는 사무 공간을 전면 개편해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협업 공간을 확대했다.

이번 사무 공간 개편은 개방형 ‘오픈 콜라보레이션 공간’과 개인 공간으로 나뉘어 있지만 협업이 가능한 ‘부서간 협업 공간’, 방해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개인업무 집중 공간’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현했다. 직원들의 업무 목적에 따라 공간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업무 공간을 재구성한 것이다.

또 활기찬 사무실 환경을 만들기 위해 ‘스탠딩 워크’도 도입했다. 장시간 앉아 근무하는 직원들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높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과 서서 할 수 있는 회의 공간, 기능성 모니터를 설치했다.

이에 따라 P&G 사무공간 내 업무 만족도는 25% 증가했다. 협업에 대한 만족도도 15% 올랐다.

김주연 한국 P&G 대표는 “직원들 간 의사소통과 협업을 장려하고, 행복한 일터를 조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업무효율성을 높여 고객들에게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한국 소비자와 시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브랜드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회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만들어 나가는 데 힘 쓰겠다”고 말했다.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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