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있기에 여주인공들은 더욱 착하고 예뻐보인다.눈빛 가득 독기를 품은채 온갖 미움과 구박을 다 받는 이들.더욱 악하게, 더욱 못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악녀들이 있어 시청자들은 드라마 보는 일이 즐겁다. 사실 악녀란 모든 내러티브 구조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요소.‘콩쥐 팥쥐‘로 상징되는 ‘착한 여자, 못된 여자’의 대비구조는 가장 단순하고 도식적이면서도 말초적 재미를 주는 장치다.‘여자끼리는 꼭 싸워야하나’ ‘시청률을 의식한 가장 손쉬운 안전장치’라는 비판속에서도 악녀들의 명성(?)이 날이 갈수록 찬란해지는 이유다.요즘 악녀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도지원 박시은 정시아를 만나 보았다.

도지원

SBS TV ‘여인천하’와 MBC TV ‘엄마의 노래’에 연이어 출연한 후 2년 만에 홍씨부인으로 TV에 복귀한 도지원은 지난해 여름 캐스팅 제의를 받고는 무척 망설였다. 경빈 박씨에 이어 또다시 악역을 맡는데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지원은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작품인 ‘토지’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결국 승낙했다. 그리고 촬영에 앞서 ‘토지’ 원작을 읽었다. 원작을 읽으면서 그의 마음은 또 다시 흔들렸다.“악해도 이렇게 나쁜 사람이 없었다. 경빈 박씨는 궁이라는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독해진 경우지만 홍씨 부인은 아무런 이유없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책을 읽다가 덮어버린 날도 많았다.”망설이며 촬영이 시작됐다. 촬영을 하면서도 처음엔 끝없이 망설여졌다.

원작이 워낙 유명해 재해석할 여지도 없이 정말 나쁜 사람이 돼야 했다.“촬영하기 전에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이 됐다. 홍 씨 부인이 너무 미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카메라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는 거다. 그리고 한 장면을 찍고 나서 모니터를 보면 내가 어떻게 저렇게 독한 표정을 지었나. 저렇게 험한 말을 했나 싶어 속상하기도 하고 그렇다.”그렇게 진행된 촬영 6개월여. 여름과 가을 장면을 촬영하고 지난 1월 8일 방송 분부터 본격 등장하면서 스튜디오 녹화가 시작됐고 촬영 분량이 점차 많아졌다.“촬영이 잦아지면서 내가 맡은 역을 미워하면서 촬영을 계속하려니 힘들었다. 그래서 이젠 사랑하려고 노력 중이다. 배우가 자신의 배역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겠는가.”

정시아

“심은하 선배의 악역 연기가 모델이죠.”‘샴푸의 요정’ 정시아가 악역을 맡았다. SBS 아침일일드라마 ‘선택’의 후속으로 지난 1월 24일 첫방송 된 ‘진주 귀걸이’(극본 주은희, 연출 고경희)에서다.정시아는 MBC 시트콤 ‘두근두근 체인지’로 연기에 입문했다. 극중 주인공 조정린이 샴푸를 바르면 변신해서 나타나는 ‘신비’역이었다. 대사가 많지 않아서 그저 ‘예쁜 척’하는 초보적 연기를 면치 못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제대로된 악역이다.정시아가 연기하는 ‘한서정’은 밝고 명랑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극한상황에서 한을 품게되는 캐릭터.

한 남자를 놓고 배다른 언니와 사랑쟁탈전을 벌이는 적극적인 인물이다.이번 역할을 맡고 정시아는 당장 심은하가 출연했던 ‘청춘의 덫’ 극본부터 챙겼다. 중학교 시절 재밌게 본 기억이 있는데다 악역 캐릭터 분석에 도움이 될까해서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찾았다.일반적으로 악역은 꺼리는 게 연기자들의 생리. 하지만 정시아는 ‘욕을 먹더라도’ 이번 역할을 잘 해낼 수만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요정’이라는 얄미운 이미지 때문에 일부 팬들의 질투어린 시기도 받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정시아는 “안티가 많은 것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놀라우면서도 기쁘다”고 말했다.

박시은

“욕해주셔서 감사합니다.”탤런트 박시은. 요정처럼 깜찍한 외모에 생전 욕이라곤 먹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그녀는 요즘 ‘욕’으로 배가 부르다. KBS 2TV 월화드라마 ‘쾌걸 춘향’에서 귀여운 악녀 채린 역을 맡은 박시은에게 시청자들이 욕을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박시은은 드라마에서 재희(몽룡)가 어릴 적부터 짝사랑하는 누나로 나온다. 그녀는 재희가 한채영(춘향)과 결혼하게 되자 뒤늦게 재희를 유혹해 둘의 사이를 멀게 하는 얄미운 연기를 펼치고 있다. 98년 데뷔 때부터 귀엽고 깜찍한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박시은의 기분이 어떨까. “솔직히 게시판 보면 당혹스럽고 기분이 찝찝하죠. 평생 먹을 욕을 지금 다 먹는 것 같아요”라던 박시은은 “본격적인 악역은 처음이라 어떻게 소화할까 고민했어요. 그래도 욕해주시는 것은 연기를 잘하고 있다는 평가 아닐까요. 감사하죠”라며 웃었다. ‘쾌걸 춘향’의 시청률 호조와 비례해 더 많은 욕을 먹고 있는 박시은은 앞으로는 애정어린 칭찬을 받고 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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